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박차고 나와 20여 년간 시민단체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운동을 해온 채 당선인은 20대 국회에서 그동안 이어온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요즘 가장 '핫(hot)한 당선인' 답게 당선 이후 15개 안팎, 하루 동안에만 4개의 인터뷰를 소화했다는 그의 전화는 인터뷰 중에도 쉴새 없이 울려댔다.
"인터뷰 요청이 많아서 정신없겠다"는 말엔 "언제까지 이렇게 찾을지 모르니 찾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며 장난기어린 미소를 짓었다. 채 당선인을 28일 서울 마포에 있는 국민의당 당사에서 만났다.
◇ "장하성 교수 강의 듣고 소액주주운동에 눈 뜨다"
고려대 행정학과에 진학했지만 전공 공부보다 우연히 접하게 된 경제학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낀 채 당선인은 기업에 대한 정보가 압축된 대차대조표를 읽으면서 재미를 느껴 회계 쪽으로 진로를 틀게 됐다.
경제학 공부를 본격화한 뒤 우연히 접한 장하성 교수의 강의는 그의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장 교수의 '소액주주운동'에 크게 감명 받은 그는 일찌감치 이 분야로 인생의 진로를 정하게 된다. 두 번의 우연이 이어져 운명이 된 셈이다.
"선생님이 하는 활동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1998년 회계사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장 교수를 찾아간 채 당선인은 이후 참여연대에서 장 교수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18년 동안 장 교수와의 인연을 이어오게 됐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뒤 3년 동안 삼일회계법인에 있었지만 내가 가야할 길은 소액주주운동이라고 생각했다"는 채 당선인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를 내놓으며 전업 연구원을 채용할 수 있게 되자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서 본격적인 소액주주운동을 하게 된다.
"개척자들이 소액주주운동의 선봉에서 힘들게 닦은 길을 저는 편하게 걸어갔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한껏 낮춘 채 당선인은 20대 국회에서 천착해왔던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 "경제개혁연대·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재미있는 일만 가득"
기억에 남는 일로는 장하성 펀드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일을 꼽았다.
"장하성 펀드에 속한 기업에 주주로서 주주총회에 나가서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기업 가치를 훼손시키는 경영진의 행위에 대한 소송도 제기했는데, 역동적이고 재미있었다. 저평가된 회사들의 주식가치를 제 값 받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전문가로 자신이 꼽히는 것에 대해서는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속해있던 경제개혁연대의 팀이 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한껏 낮췄다.
그러면서 "재벌그룹의 모든 계열사의 지분구조를 분석했던 보고서를 3년째 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 '상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 제가 쓴 보고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아서 '일감몰아주기=채이배'라는 인식이 생겼을 뿐"이라며 설명했다.
◇ "新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로 安 대선캠프참여"
다만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이 자신이 속한 단체(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던 그는 "내가 여기(진심캠프)서 활동하는 것이 절대 언론에 알려져선 안 된다"며 '쉐도우 멤버(shadow member)'를 약속 받고 정책자문 역할을 했다.
다만 그때의 인연으로 안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공정성장론 등과 관련된 포럼을 할 때는 패널로도 참여했고, 안 대표가 의정활동을 할 때 조세와 관련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안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창당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치적 지형이 바뀔 것을 예상한 그는 이후 정치신인들의 등용기회가 더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했다.
채 당선인은 "연구소 사람들과 정치권 입문에 대해 상의해 봤는데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며 "제도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면 지금 하는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러던 중 지난 1월 중순쯤 당에서 인재영입 제안이 왔고, 고민 끝에 ‘기회가 왔을 때 잡자’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과 부인 역시 말리기 보다는 응원해줬다"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네 성향은 오히려 정의당과 비슷하지 않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정의당에선 오라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 "직장을 국회로 옮겼을 뿐…수행비서없이 지하철로 다닐 예정"
'제2의 김기식'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김기식 의원만큼 열심히 일하라는 주문이라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재벌 저격수'가 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재벌 저격수라는 용어는 저에게 맞지 않다"며 "저는 반(反)기업, 반(反)시장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기업 가치를 보호하고 시장원칙을 지켜야한다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대기업이 계열사를 만들어 일감몰아주기를 하게 되면 기존에 해당 대기업에 물건을 대던 중소기업들은 거래에서 배제되거나, 계열사를 통해서만 대기업에 물건을 대며 하청기업화되고, 계열사는 '통행세'만 받으며 이익을 챙기는 시장경쟁질서 훼손 행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필요하게 전이된 부(富)'는 계열사를 소유한 지배주주 일가로 이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세금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채 당선인의 지적이다.
채 당선인은 "지배주주일가가 일감몰아주기로 '100'의 이익을 봤는데, 불법 및 편법 행위가 적발됐을 때 지는 책임이 '50'뿐이라면 불법과 편법을 하는 것이 이익 아니냐"고 반문하며 "일감몰아주기가 적발됐을 때 지는 책임이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제도를 정비해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했다.
연구소에서 있을 때는 일부러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그는 당선 이후 찾아온 기업 관계자들에게 "의원실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고 했다"며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 문제에 대해 어느 한편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듣겠다고 말했다.
채 당선인은 의원에게 주어지는 예산을 최대한 정책개발에 쏟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선된 뒤 연구소 동료들이 선물을 해준다고 해서 고민해 보니 백팩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사달라고 했다. 동료들이 '무슨 의원이 가방을 메고 다니냐'고 했는데 수행비서도 안 두고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다닐 예정이라 백팩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어리고 젊은데(웃음) 저를 수행하는 분보다 정책을 개발하는 분을 한 분 더 뽑고 싶다. 베테랑 보좌진들은 '처음엔 다들 그러다가 결국 포기 한다'고 말리시지만 일단 시도해보고 도저히 안 되면 수행 비서를 뽑으려고 한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 너무 단정적으로는 쓰지 말아 달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