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영갑 (양손 없는 마라토너 선수)
◆ 김영갑>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김현정> 완주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 김영갑> 감사합니다. (웃음)
◇ 김현정> 런던마라톤에는 10년 만에 출전하신 거라면서요?
◆ 김영갑> 네, 그때 달릴 때 시민들의 응원이나 참가자들의 서비스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할 기회가 되면 런던 마라톤 또 한 번 참가하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이번에 어떻게 또 참가 선수로 이렇게 달리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사실은 이번에 하위권이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TV 카메라에도 통 비추지를 않고 외롭게 달리셨겠구나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던 거예요. 응원하는 분들 많고 그랬습니까?
◆ 김영갑> 최근에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좋은 기록으로는 달리지 못했는데 정말 시민들 응원 받으면서 뛰니까 42. 195km 우리의 여정이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 김현정> 사실은 하위권으로 처지게 되면 살짝 걷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런 유혹의 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김영갑> 그렇죠. 힘들고 그럴때는 정말 뛰기도 싫고 걷고 싶은데, 시민들 때문에, 시민들 응원 때문에 못 걷는 것 같아요. (웃음) 힘들어도 차마 걷지 못하겠더라고요.
◆ 김영갑> 네, 손목 아래 양손이 다 절단되었습니다.
◇ 김현정> 그게 몇 년 전이죠?
◆ 김영갑> 98년도 1월에 대기업 변전소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이 되었는데 사고 당시에 눈을 떠보니까 양손이 새카맣게 타 있더라고요.
◇ 김현정> 해병대 출신이시라면서요?
◆ 김영갑> 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해병대 지원해서 갔다 왔어요.
◇ 김현정> 그렇게 활동적이고 해병대 출신의 건장한 청년이 한순간에 6600볼트 전기에 감전이 돼서 양손을 모두 절반해야 됐을 때 그때 그 심정이라는 게 참...
◆ 김영갑> 그날 사고 났을 때 병원에 가는데 비가 내리더라고요, 막. 비가 내리는데 얼마나 슬프던지요. 차라리 죽었으면 지금의 이런 고통은 없을 건데 그리고 가족 생각들, 친구들 생각이 진짜 슬라이드...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이렇게 막 지나가는 거예요.
◇ 김현정> 왜 안 그러셨겠어요.
◆ 김영갑> 살아 있는 게 그 당시에는 원망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 김현정>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절망 속에 사셨어요?
◆ 김영갑> 처음에 한 2개월 정도는 그렇게 절망 속에서 병원치료 생활을 한 것 같아요. 병원이 7층이었는데 만약에 여기서 내가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혹시나 뛰어내렸는데 죽지 않으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이 여러 번 들었어요.
◇ 김현정> 그러다가 어떻게 달릴 생각을 하셨어요. 달리기라는 걸 생각하셨어요?
◆ 김영갑> 처음에 병원 퇴원하고 시골집에 가 있었어요. 집에 가 있다가 너무 막 답답하고 하니까 어린 조카들 데리고 뒷산에 놀러를 갔어요. 밖에 나오니까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신선한 공기도 쐬고 하니까 참 좋더라고요. 그 다음날 끈 풀린 등산화 신고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거든요. 거기 운동장 세 바퀴 달리니까 도저히 달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 김현정> 힘이 들어서?
◆ 김영갑> 네, 그래서 집에 들어갔죠. 그리고 또 그 다음날 또 달리러 갔어요. 계속 그 다음 날도 가고 계속 이렇게 가다 보니까 자꾸 괜찮아지더라고요. 기분도 좋고.
◇ 김현정> 숨은 찬데?
◆ 김영갑> 네, 달리기도 하다 보니까 같이 동네에서 달리기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또 그분들과 같이 마라톤대회도 한 번씩 가게 되고요.
◇ 김현정> 달리기에서 희망을 보고 달리면서 만난 그 친구들 사이에서 정을 느끼고 그러면서 세상과 다시 끈이 생기신 거네요.
◆ 김영갑>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김영갑선수, 달리기라는 게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 김영갑> 그렇죠. 사실 다리, 발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팔도 중심을 잡아서 열심히 흔들어줘야 되는데 저는 그게 안 되니까, 잘 안 되니까 내리막 뛸 때 그리고 오르막 올라갈 때 여러 번 넘어지기도 했고 또 넘어질 뻔 한 적도 많았고요.
◇ 김현정> 멀쩡하게 잘 달리다가 그냥 픽픽 넘어지고 이럴 때는 속상하셨겠어요.
◆ 김영갑> 자신에 대한 화가 나는 거죠, 그냥.
◆ 김영갑> 기억납니다. 날짜까지 기억합니다.
◇ 김현정> 언제입니까?
◆ 김영갑> 2001년도 그때 6월 첫째주 일요일에.
◇ 김현정>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그냥.
◆ 김영갑> 회원 몇 분들하고 같이 뛰러 갔는데 내가 과연 그것을 완주할 수 있을까, 완주는 무슨, 꼴찌나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현정> 그런데 그날 어땠어요?
◆ 김영갑> 3시간 42분인가 달렸어요.
◇ 김현정> 잘하셨네요.
◆ 김영갑> 뛰고 들어오니까 같이 뛰던 회원분들이 박수 쳐주고 터미널 근처에서 맛있는, 고기랑 또 수박이랑 사서 같이 먹고 그랬어요.
◇ 김현정>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수박하고 고기였겠어요, 그날의. (웃음)
◆ 김영갑> 그렇죠. 기분도 좋았어요, 그때. (웃음)
◇ 김현정> 그 기분을 잊지 못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 게 170번의 완주.
◆ 김영갑> 네, 거기서 자꾸 재미를 붙여가는 거죠.
◇ 김현정> 그렇죠. 언제까지 달리실 거예요?
◆ 김영갑> 늙지 않는 한 달릴 것 같아요. 살아 있는 동안 은 계속 달릴 겁니다.
◇ 김현정> 멋있습니다. 달리기 말고 다른 거 꼭 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마라토너 김영갑이 아니라 인간 김영갑으로서 내가 또 하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 김영갑> 집에서 밥 같이 먹고 신발 끈 묶어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 김현정> 아직 미혼이시죠. 마라톤 열심히 하시다 보면 좋은 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김영갑> 그러니까 이렇게 또 달리고 다녀야죠.
◇ 김현정> 열심히 달리면서 인간 김영갑을 사랑해 주는 좋은 짝지도 만나시기 바라겠습니다.
◆ 김영갑> 고맙습니다.
◇ 김현정> 참, 김영갑씨 보니까 장애란 약간의 불편함이지 불가능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네요. 김영갑이라는 이름, 우리 청취자들도 기억해 주시고 저도 기억하고 청취자분들도 기억하겠습니다. 마라톤 볼 때마다 찾아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 김영갑> 하여튼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 김현정> 그리고 결혼소식 잡히시면, 짝지 찾으시면 연락 한번 주세요.
◆ 김영갑> 국수 제가 두 그릇 드릴게요. (웃음)
◇ 김현정> (웃음) 김영갑선수, 고맙습니다.
◆ 김영갑>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양손 없는 마라토너, 이번에 런던 마라톤도 멋지게 완주하고 돌아왔습니다. 김영갑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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