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부실에 대한 책임 규명이 먼저라는 여론이 비등한데다, 재정건전성과 발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서울 금융위원회에서 '제3차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달라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기재부의 재정과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고, 엄격히 제한돼야 할 발권력을 동원하는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국책은행은 부실에 대한 책임규명이 선행돼야 하고, 부실기업주들에게는 손실분담 등 납득할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재정지원에 앞서서 부실에 대한 책임규명이 우선돼야 하고, 그런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최소한의 재정지원과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재정지원의 경우 국회동의를 거쳐야 한다. 국회통과 과정에서 재정지원에 대한 당위성과 적정성, 지원방법, 절차 등에 대한 동의를 야당에 일일이 구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정부로서는 부담을 갖는다. 또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여당은 발권력을 가진 한은이 돈을 찍어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최후의 대부자이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발권력은 최소화해야 한다. 과거 외환위기 등의 위기 시를 제외하고 발권력을 동원해 은행을 직접 지원한 사례는 없다. 과거 수출기업 지원을 위해 수출입은행에 출자한 사례는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다.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재정을 통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국회동의라는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도 재정을 통한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가 위기상황에 놓인 것도 아닌데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발권력을 동원할 경우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고, 국가경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발권력 남용의 근거가 되는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정된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는 사안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는 “구조조정이 절실하고 시급한 것은 맞지만 발권력으로 국책은행을 지원하는 것은 위기상황에나 써야 하는 것인데 지금이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상향이냐?”고 반문하며 “재정으로 할 수 있는데 정부와 여당이 국회 동의라는 어려운 절차가 필요하니까 발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말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은 특혜를 주는 것인 만큼 국회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 엄격히 추진돼야 하고,특히 발권력 동원은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