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전 세계 해운업계도 생존을 위한 ‘헤쳐 모여’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해운선사들의 모임체인 해운동맹이 재편되면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경쟁자로 돌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뒤늦게 국적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 작업이 늦어져 내년 3월 새로운 해운동맹 체제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국내 해운업 자체가 국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 해운동맹이란?....공존공생 관계
국제 해운시장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몇몇 해운선사끼리 ‘얼라이언스(동맹)’을 결성해 서로 상부상조하는 체계다. 항공사들도 이런 얼라이언스가 구축돼 있다.
하나의 해운선사가 전 세계 주요 항만을 모두 다 운항할 수 없기 때문에, 해운동맹을 맺어 화물 운송 항로가 겹치지 않도록 배분하고 운송비도 동일 요금 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선박이 부족하면 서로 빌려주기까지 한다.
같은 해운동맹 소속 해운선사끼리는 서로 화물수주와 가격 경쟁을 하지 말자는 일종의 카르텔을 만든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한 해운선사는 바다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어 운영 자체가 힘들어 지게 된다.
◇ 세계 해운동맹 재편...거대 2강 체계 구축, 중국 주도
나머지, CKYHE 동맹과 G6동맹, O3동맹 등 3개 해운동맹은 고만고만한 시장점유율을 갖고 경쟁을 해 왔다.
그런데, 이 같은 해운동맹이 다시 헤쳐 모이기를 시작했다. 해운업계의 새로운 합종연횡은 중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형국이다.
중국과 프랑스의 국적선사들은 지난 19일 새로운 ‘오션동맹’을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오션동맹은 세계 해운물동량의 36%까지 점유하며 최대 동맹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세계 해운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던 덴마크와 스위스의 '2M동맹'이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게 된 상황이다.
문제는, 한진해운이 가입해 있는 ‘CKYHE 동맹’과 현대상선이 속해 있는 ‘G6동맹’이 반 토막 나면서 존재감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25일 열린 ‘해운동맹 재편에 따른 대책회의’에서 세계 해운동맹이 4개에서 3개로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2M동맹과 오션동맹의 참여 선사가 결정된 만큼, 남은 1개 동맹은 한국과 일본, 독일의 국적선사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 구조조정 찬물...정부, 국제 해운시장 개편 늑장대응 책임
여기서 문제는 남아 있는 1개 동맹의 출범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년 3월까지는 무조건 결성해야 한다. 현재 독일의 Hapag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나머지 동맹은 5월 늦어도 6월까지는 재편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세계 해운동맹 재편 논의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국제 해운시장의 재편 논의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제기됐던 사안이다. 중국은 지난 2월 2개 국적선사를 1개로 통합한 뒤 프랑스와 손잡고 발 빠르게 대처해 국제 해운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적자가 누적돼 부실화가 심각했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구조조정을 늦추면서, 국제 해운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을 자초했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25일 대책 회의에서 “글로벌 해운시장이 급속히 개편되는 상황에서 양대 국적선사뿐만 아니라 해운, 물류, 항만 등 국내 전반적인 물류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정부 스스로가 해운시장 재편에 대해 사전 대응책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더 나아가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해운업 구조조정도 꼼꼼하게 따져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보기 어렵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올렸다는 인상이 짙다.
정부의 이런 늑장대응, 무대책 때문에 국내 물류 유통산업 전체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 해운업 경쟁력 약화...국내 항만, 내륙 화물운송까지 부메랑
우리나라의 원양 항로(미주, 유럽) 물동량은 지난 2014년 기준 130만TEU로 이 가운데 26%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대 국적선사가 처리했다.
그런데, 국제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할 경우 양대 국적선사의 처리비율은 1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산항과 광양항 등 국내 주요 항만의 처리물동량도 줄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김영석 장관의 말처럼 내륙 화물 운송량도 감소하는 부메랑 철퇴를 맞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해수부가 서둘러 25일 긴급 전문가 대책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우호 본부장은 “만에 하나 국적선사들이 해운동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해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게 되고, 항만과 내륙화물 같은 관련 기업들의 매출도 줄어들게 돼 연쇄 파급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적선사들이 해운동맹 재편을 논의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정부가 구조조정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줘야 기업들이 준비나 협상 과정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용선료 협상을 먼저 하라고 하는데, 이것 보다도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해운동맹에 가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라며 "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국적선사를 1개로 통합해서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