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00년 전만 해도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 또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의존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위적인 실험과 적절한 장치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이론화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탄생은 과학의 혁명, 더 나아가 인식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대사건이었다. 그 혁명의 선두에 서 있던 인물이 16세기 이탈리아의 자연 철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년)였다.
'새로운 두 과학: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하여(Due Nuove Scienze)'는 대중들에게 물체의 운동 법칙을 소개하는 최초의 근대 역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1638년 가톨릭교회의 검열을 피해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이 책은 '대화'로 인해 종교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갈릴레오가 자택에 연금된 채 눈이 멀어가는 와중에 완성한 근대 물리학의 고전이다.
운동은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오는 매혹적이면서도 난해한 문제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과감하게 매개 도구와 실험을 통한 측정 그리고 사고 실험을 과학 연구에 도입했다. 그 결과 인간은 불완전한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 진리의 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새로운 두 과학'을 통해 독자들은 갈릴레오와 함께 새로운 과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자네가 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일세. 생각해 보면, 광학, 천문학, 역학, 음악, 또는 다른 종류의 과학에 수학적 증명을 적용할 때는, 먼저 엄밀한 실험을 통해서 근본이 되는 법칙들을 엄선한 다음, 그것을 기초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것이 보통 하는 과정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 본문에서
'새로운 두 과학'은 '대화'와 같이 살비아티, 사그레도, 심플리치오라는 세 인물이 등장해 나흘간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비아티는 갈릴레오의 운동 이론을 소개하고, 심플리치오는 당시 학계 정설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대변하며, 사그레도는 교양 있는 일반 시민을 상징한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동료 학자'로 등장한다. 세 사람은 나흘간 물체의 응집력, 강도와 부피와 길이의 관계, 물체의 등속도 운동, 가속도 운동, 포물선 운동에 대해 '동료 학자'가 쓴 책을 같이 읽으며 자유롭게 토론한다.
「첫째 날 토론」은 물체의 응집력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살비아티는 물체의 응집력의 근원으로 진공을 지목한다. 하지만 단순히 진공의 존재만으로 고체의 응집력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에 갈릴레오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진공 하나하나가 당기는 힘은 작지만, 아주 작은 진공들이 고체를 구성하는 미세한 입자들 사이에 무한히 많다면 강한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게오르크 칸토어의 무한수를 넘나드는 갈릴레오의 놀라운 통찰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진공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 두 원칙을 제시했다. 하나는 같은 매질에서 다른 두 물체가 움직이는 속력은 각각의 무게에 비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매질에서 같은 물체가 움직이는 속력은 매질의 밀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공에는 밀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진공 속에서 물체는 순식간에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었다.
살비아티는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사고 실험 하나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큰 돌이 움직이는 속력이 8이라 하고, 작은 돌이 움직이는 속력이 4라고 하
세. 이 둘을 묶으면 전체의 속력이 8보다 느리게 되겠지. 하지만 두 돌을 합쳤으니, 속력 8로 움직이던 돌보다 더 무거운 돌이 되었잖아? 그러니까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군. 자네 의견과 모순이잖아? 그러니까 큰 물체든 작은 물체든, 그들이 비중(표준 물질에 대한 어떤 물질의 밀도의 비 — 옮긴이)이 같다면, 같은 속력으로 움직인다. — 본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거짓임을 확인한 후 살비아티는 공기 저항이 없다면 같은 매질에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의 운동 속력은 같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둘째 날 토론」은 물체의 응집력, 즉 강도가 물체의 길이와 두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살비아티는 지렛대의 원리에서 시작해 기둥의 길이 방향, 두께 방향, 폭 방향 각각에 추를 달아 버티는 힘이 어느 정도이며 그 비율은 얼마인지 살펴보고, 기둥의 길이와 굵기 변화에 따른 강도 변화가 어떤 수학적 법칙을 따르는지 도출하며, 물체 자신이 스스로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한계 크기를 구한다. 이를 통해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구조를 유지한 채 크기만 무한정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여기 조그마한 뼈 하나와, 그 길이를 세 배로 늘였을 때 작은 뼈가 작은 동물의 몸에서 하는 역할을 큰 동물의 몸에서 할 수 있도록, 굵기를 늘인 큰 뼈를 그렸네. 이 그림을 보면, 큰 뼈는 길이와 굵기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어. — 본문에서
「셋째 날 토론」과 「넷째 날 토론」은 물체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정지 상태가 자연 상태이고 물체의 운동은 외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는 물체가 '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 핵심 문제였다. 높은 곳에서 돌을 손에서 놓으면 돌이 땅에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우주의 중심, 즉 지구로 돌아가려는 물체의 속성 때문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운동의 원인이 아니라 운동의 양상에 주목했다.
「셋째 날 토론」에서 주로 다루는 운동 법칙은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운동과 자연히 가속되는 운동에 관한 것이다. 물체의 운동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난제 중 하나였다. 일단 물체의 운동을 구하려면 물체의 이동 거리와 이동 시간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밀하게 측정을 할 도구나 기술이 부족했다. 그러니 속력이 변화하는 가속 운동은 더 큰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경사면에서의 실험을 통해 가속 운동의 수학적 패턴을 밝혔다. 알고 보니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했다.
길이가 12큐빗, 폭은 0.5큐빗, 두께는 세 손가락 정도인 기다란 나무 판을 하나 구했네. 그다음, 거기에다 폭이 손가락 하나 정도 되는 홈을 팠어. 이 홈을 매우 쪽 곧고 매끄럽도록 닦은 다음, 그 안에 양피지를 대었어. 그다음, 그 홈을 따라 단단하고, 매끄럽고, 매우 둥근 구리 공을 굴렸어. 그리고 공이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었어. 이런 실험을 백 번 이상 되풀이했는데, 항상 움직인 거리는 걸린 시간의 제곱에 비례했어. — 본문에서
「넷째 날 토론」의 주제는 공중에 던진 물체의 운동의 모양이 무엇인가였다. 여기서 갈릴레오는 두 종류의 운동, 즉 수평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운동과 수직으로 자연히 빨라지는 운동이 결합하면 그 궤적이 포물선이 됨을 밝힌다. 그리고 지상에서 물체를 쏘아 올리는 각도에 따라 포물선의 폭과 높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포물선의 폭이 같을 때 각도에 따라 높이와 잠재 거리는 어떻게 되는지를 표로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된 「부록」에는 갈릴레오가 젊은 시절 아르키메데스의 정적분 이론을 발전시켜 회전체의 부피 및 무게중심 등을 연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조그마한 책에서 선보인 원리들이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거쳐서 다른 많은 놀라운 결과들을 낳을 걸세. 물리학의 다른 어떠한 분야보다도, 이 분야가 더 중요하고 우선인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 같네. — 본문에서
물체의 강도와 운동에 관한 갈릴레오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사람은 뉴턴이었다. 뉴턴은 무한의 개념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미적분이라는 새로운 수학적 분석 도구를 내놓았다. 또한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갈릴레오가 설명한 물체의 운동 법칙을 모태로 하여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이론화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물체들 사이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움으로써 고전 역학의 문을 열어젖혔다.
물리학의 탄생을 우주 대폭발 사건에 비유한다면 갈릴레오의 '새로운 두 과학'은 대폭발 전에 존재한 '우주의 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개 도구를 통해 실험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갈릴레오의 전통은 더 나은 도구와 장치로 관찰과 실험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과학의 진보를 이끌었다. 갈릴레오의 위대한 유산은 '새로운 두 과학'이 출간된 지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과학이 미답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 추천사
갈릴레오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론 물리학자)
갈릴레오의 실험 관찰은 명확하고 정확했다. 옛 형이상학은 별다른 진보를 하지 못했지만, 갈릴레오의 연구는 번성하여 이후에 멋진 열매까지 맺었다. — 프랭크 윌첵(200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운동과 중력에 관한 실험을 바탕으로 갈릴레오는 요하네스 케플러와 르네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이 발전시키게 될 고전 역학 법칙의 기초를 닦았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물리적 실험이나 사고 실험을 설계하고, 해석하고, 그 한계를 이해하는 갈릴레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리사 랜들(이론 물리학자)
현대 과학의 전환을 나타내는 개념과 절차의 주요한 변화를 그처럼 간결하고 정확하게 포착하지는 못할 것이다. — 스티븐 제이 굴드(진화 생물학자)
갈릴레오가 17세기 초 중력 가속도 실험을 하기 전까지 누구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하는 공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 누구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니! — 닐 더그래스 타이슨(천문학자)
갈릴레오는 자연 철학, 즉 운동의 본성에 대한 지식의 문을 열어젖힌 최초의 인물이다. — 토머스 홉스(정치 철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사이언스북스/424쪽/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