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A(74)씨는 지난 1월 14일 오전 9시쯤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을 경찰관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A씨의 개인명의가 유출돼 마이너스 통장이 개설됐다"며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집안에 보관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뉴스로 접하던 보이스피싱을 의심했지만, 돈을 직접 찾아가라는 남성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잠시 뒤 이 남성은 A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시간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하며 A씨의 판단력을 흐리게했다.
계속되는 이 남성의 전화에 마음이 급해진 A씨는 결국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집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에 있던 현금 9500만 원을 인출했다.
A씨가 돈을 인출하고 나자 남성은 다시 전화를 걸어 "돈을 여행가방에 넣어 전화기 옆에 둬라. 주민등록증이 도용됐으니, 빨리 동사무소로 가서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어라. 집 열쇠는 신발 안에 넣어서 현관문 앞에 둬라"고 했다.
상대방이 경찰관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각인된 A씨는 남성의 말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A씨가 집에 돈을 두고 주민증을 발급받기 위해 나가자 중국동포 허모(21)씨가 A씨의 집 앞에 나타났다.
허씨는 열쇠를 찾아 현관문을 연 뒤 돈이 든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알고보니, A씨에게 전화를 건 남성은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원. 허씨는 지시를 받고 돈을 훔치러 온 다른 조직원이었다.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간 허씨는 송금책에게 돈을 건넨 뒤 그 대가로 200만 원을 받아 중국으로 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폐쇄회로)TV 화면 등을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재차 국내에 입국한 허씨를 긴급 체포했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절도와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허씨를 구속하고 중국 내 보이스피싱 일당을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