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시' 수년째 철저한 무대응 일관, 뒤에선 각종 편법 불법 정황
이처럼 장막 뒤에 숨어있던 옥시가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불법을 저지른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학교 연구팀에 의뢰해 유리한 데이터를 뽑아내고, 사내 게시판에 부작용 관련 글을 지웠다. 또한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새 법인을 설립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회사까지 바꿀 정도로 치밀하게 대응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는 옥시 측이 서울대와 호서대에 의뢰해 제출한 유해성 반박실험의 조건 자체가 회사에 유리하도록 조작한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학 연구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내 게시판에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부작용 호소글 수백건을 임의로 삭제한 것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이 지난 2월 옥시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사내 전산망 서버를 복원해보니 상품후기 및 문의게시판에 올라온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등 상품 부작용 호소 게시글 수백 건이 삭제됐다.
옥시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새 법인을 설립하는 편법을 쓴 정황도 포착됐다.
옥시는 2011년 12월 12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했다. 이는 "피고인이 사망하거나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을 경우 공소기각 결정을 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328조를 악용한 꼼수로 검찰은 보고 있다. 형사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아예 소멸시켰다는 것.
이같은 옥시의 부도덕한 행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검찰은 오는 19일 옥시 측 실무자를 가장 먼저 불러 본격적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 롯데마트 홈플러스 면피용 사과, "이제라도 피해 수집 나서야"
롯데마트의 경쟁자인 홈플러스는 18일 오후에 여론을 의식한 듯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향후 검찰의 공정한 조사를 위해 최대한 협조하고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검찰 수사 종결시 인과 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 애경그룹, SK캐미칼 등은 침묵중이다.
기자회견을 한 롯데마트도 피해자 보상 범위와 시기와 방식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검찰의 소환조사를 앞두고 면피용 사과를 한 것이라고 개탄하면서, 이제라도 단일화된 창구를 만들어 피해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호 피해자 모임 대표는 "5년이 지나 이제 검찰이 오늘부터 관련자들을 소환을 하겠다고 하니 기자들 앞에 브리핑을 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오늘 사과 기자회견에 대해 연락받지 못했고 언론 보도를 보고 이 자리에 왔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영국 옥시레킷벤키저 본사까지 찾아가고 검찰에 찾아가 항의하고 피해 사실을 접수하는 등 우리 스스로 여기까지 왔다"며 "옥시레킷벤키저 피해자가 가장 많아 우선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항상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고 가해기업 중 피해자를 만나러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은 "(롯데마트의)이 사과는 피해자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과가 아니다"라며 "검찰 수사를 앞두고 사과를 한 것은 검찰에 잘 봐달라고 사과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소장은 "정부와 환경부가 지난해 피해 접수를 받은 것도 질질 끌다가 올해는 아예 피해신고조차 받지 않고 있는 등 뒷짐만 지고 있다"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규탄하며 "이제라도 기업측이 나서서 신고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습기 살균제 폐손상으로 정부가 현재까지 인정한 사망자는 146명이다. 추가 피해 신고 접수와 민간에 신고된 접수를 포함하면 전체 피해자 규모는 1500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사망자 규모도 230~24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PHGM나 CMIT/MIT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해 '살인죄'로 고소된 업체는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마트 ▲용마산업사 ▲홈플러스 ▲크린코퍼레이션 ▲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코스트코코리아 ▲글로엔엠 ▲애경산업 ▲SK케미칼 ▲이마트 ▲GS리테일 ▲퓨엔코 등 15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