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 81살이던 해인 1990년에 제작한 영화 <꿈>은 지진과 화산폭발의 여파로 일본의 모든 원전이 폭발하는 대재앙을 꿈의 형식을 빌려 고발한 영화다. 후지산이 붉은 화염에 휩싸여 붕괴되는 장면은 인류의 종말로 묘사된다. 이 영화가 개봉된 후 21년이 지난 2011년 동일본에 규모 9.0의 강진이 일어나 후쿠시마 원전이 붕괴됐다. 영화 <꿈>이 현실이 되었고, 영화 속 주인공이 꾸었던 '꿈'은 '예지몽'인 셈이었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스베틀라냐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였다. 이 책의 서문에는 작가가 일본 원전을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가 실려 있다. 그 기억이 생생해 다시 읽어보았다.
지난 주말 구마모토 강진은 규모 7.8이었다. 2011년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9.0의 강진 이후 불과 5년 만에 발생한 것이다. 두려운 것은 규슈 지역에서 잇따르고 있는 지진의 진앙이 점차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진이 일본 열도 북동쪽으로 이동할 경우 시코쿠(四國)에서 오사카에 걸쳐 있는 '중앙구조선 단층대'가 자극받아 이른바 도미노처럼 강진이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일본 과학계 정설이다.
과학자들은 이 지진은 30년 내에 발생할 확률이 70% 선이라고 예상한다. 그 지역에는 이카타(伊方) 원전이 있다. 이 일대 규모 8.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붕괴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이번 강진으로 일부가 무너진 구마모토성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성 중 하나다. 이 성은 1607년 '가토 기요마사'가 축조한 난공불락 철옹성의 상징물로 명성이 높다. 이 성이 이번 강진으로 일부가 붕괴되고 성벽이 허물어졌다.
<꿈>을 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다른 영화 <카게무샤>에 '다케다 신겐' 부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고야성을 공격하는 전투 중에 강진이 발생해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온다. 갈라진 땅 아래로 추락하는 무사들은 지옥 불 속으로 던져진 죄인들처럼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른다.
한국은 어떤가?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지진의 규모에 따라 강진의 여파가 덮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한국의 원전은 공교롭게도 경상도 지역에 몰려있다. 경주, 울진, 기장 등 경상도 해안지역에 무려 18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지진발생 통계를 보면 경상도지역이 32.4%로 가장 높다.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지진은 779년 경주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했다. 이 정도 피해라면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인간은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적수가 못 된다. 규모 8.0의 강진에 끄떡없다고 장담하는 원전이 9.0의 강진이 찾아와 붕괴됐다. 인간은 이제 9.0에도 견딜 수 있는 원전을 건설하려고 들 것이다. 언젠가 규모 9.5%의 강진이 발생할 '경우의 수'는 외면한 채 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 <꿈>에서 그려 보인 대지진과 원전폭발의 예지몽은, 거장이 인류에게 보낸 묵시록이다. 대자연 앞에서 과도한 욕망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