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달리면 다섯 명의 노동자가 죽지만 비상선로로 방향을 돌리면 한 명의 노동자만 죽는다. 기관사는 혹독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과연 어느 쪽이 정의로운 선택일까.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던진 '정의'에 관한 질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다수의 법칙을 정의라고 믿는 '공리주의'적 사고다. 반대로 다수에 속하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도 존중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믿는 '자유주의'가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섯 사람의 목숨을 건졌다고 해서 만인이 행복할 수 있을까?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희생양이 된 한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부분에 이르면 '정의'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킨 기관사의 판단이 정말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속지 않았다. '기관사 딜레마'의 배경을 알고 있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노림수까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는 본래 '정의'가 없었다는 것과 이한구 기관사는 처음부터 두 갈래 선로 앞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 까지도 안다. 왜냐하면 이미 가야할 선로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배신자 심판론'과 '진실한 사람을 국회로 보내 달라'는 호소는 국민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주지 못했다.
유승민의 '정의'는 누구나 동등한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무론적 '정의'인데 반해 박 대통령은 '기관사 딜레마'를 동원한 공리주의적 '정의'를 통해 자신을 배신한 자를 단죄하려 했다가 역습을 당한 꼴이다.
유권자들은 빨간 옷을 입고 나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대통령보다, 흰옷을 입고 나와 '정의'를 심판해 달라는 유승민의 손을 들어줬다. '여소야대'로 판가름 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의 '배신론'이 유승민의 '정의론'에 완패 당한 전투였다. 이 전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확전되었고, 새누리당이 야당에게 참패당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