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혜리 "투표는 권리이자 힘, 여러분 함께해요! ② 영화감독 이준익 "선거는 혁명…투표 포기는 '셀프디스'" ③ 웹툰작가 김보통 "투표 안 하면, 안 바뀝니다" ④ 장도연 "웃는 국민과 우스워 보이는 국민의 차이, 투표에" ⑤ 청년유니온 위원장 "젊은층 낮은 투표율, 마냥 꾸짖을 일만은 아냐" ⑥ 전원책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계속) |
"저는 보수주의자예요. 그런데 보수당인 새누리당의 현재 모습을 보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어렵다는 마음이 듭니다. 차악이라도 나으니 새누리당을 지지하러 투표소로 갈지, 아니면 새누리당 혼나 보라고 더민주당을 찍으러 투표소로 갈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정도의 열정이 제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 변호사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라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 범자유주의 아래 양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는데 제 위치는 민주당 내 우파, 공화당 내 좌파 정도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저는 빈부의 격차에 대해 중앙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을 해야만 한다는 입장입니다. 사회민주주의 안에도 눈여겨볼 게 많다고 생각해요. 보수주의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왜곡 돼 있어요. 마치 시장 자유만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로서 지난 20년 동안 할 말은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죠. (웃음)"
그는 "지금은 다양한 학문을 융합해 공부를 한 정치평론가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자문 그룹이 그렇게 열악하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공학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 명단을 보고는 절망했다"고도 말했다. "대다수가 개인적인 입신영달 위해 정치에 투신한 이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부쩍 '소명'을 강조합디다. 저는 그 말 진짜 안 믿어요. 안 대표는 소명으로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소명으로 정치를 하려면 헌신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고, 자기 희생을 하면서 열정을 가져가야 해요. 그런데 지금 안 대표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잖아요.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한 강렬한 욕망만 보이니까요."
◇ "원내대표 지시 받아서 당론투표만 할 거면 국회의원 왜 하나"
"여당만 하더라도 비례대표를 선발할 때 그렇게 뽑으면 안 되죠. 폄훼하는 게 아니라 저도 바둑 애호가로서 조훈현 9단을 좋아합니다. 그분은 바둑계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잖아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분이 국가적 아젠다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갖고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은 '로메이커'(lawmaker), 즉 '입법가'입니다. 법적인 사고능력을 기본으로 수많은 아젠다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돼 있어야 하죠. 법안을 수없이 처리하면서 그것을 '가'할지, '부'할지에 대해 정당 원내대표 지시만 받아서 할 거라면 무엇 때문에 국회의원을 합니까. 실력 없으면 하지 말아야죠."
"이번 20대 총선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한 과도기로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봤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시작한지 환갑을 훌쩍 넘겼으니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가해야 할 때도 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기대감은 "총선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를 보면서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복수 정당제를 바탕으로 각 정당마다 뚜렷한 이념과 정책으로 묶이는 시스템이 완비 돼야 합니다. 그렇게 이념과 정당이 대중화 됨으로써 대중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정당을 운영하는 시스템 자체가 대중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기에 문제가 계속 생깁니다. 예컨대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두고 '존영'이라는 말을 쓴 것만 봐도, 만약 정당이 대중화 돼 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겠어요. 정당 시스템 자체가 보수 중심의 패거리·조폭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존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가령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를 할 때도 장관,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쓰잖아요. 나중에 대통령의 웃음소리, 기침소리까지 다 기록돼 배부 되는데, 쉽게 말해 '과잉 충성'인 거죠."
◇ "미흡한 현행 선거제도, 결선투표 도입 등 개선 필요하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프랑스·1805~1859)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20대 국회를 상향식 민주주의를 위한 과도기로 생각했어야 해요.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90% 이상이 20대 국회의원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상향식 공천을 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과도기를 겁내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꾸 미적거리다가 결국 이번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난장판 공천이 돼 버렸어요. 친박과 비박으로 나뉜 여당은 커튼 뒤 권력이 모든 것을 재단해 버렸고, 야당 역시 특정인의 대권가도에 방해가 될 요소는 싹을 다 잘랐어요. 최소한 이러한 인식이라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전 변호사는 그 연장선 위에서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은 것에 대해서도 "젊은이들이 정치를 냉소·혐오로 바라보는 '저항' 단계를 넘어 '무관심'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현행 투표 제도의 개선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저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까지는 이른바 선관위의 투표 독려가 타당하다고 생각했죠.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선택하고, 최악이 있으면 차악을 선택하라'고 자주 강조했으니까요.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투표에 강제성을 부여해서 기권하면 벌금을 물리고 있어요. 반면 영국, 미국 등은 개인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기에 기권도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죠. 예컨대 후보자 A, B가 있다고 칩시다. 저는 A가 무조건 싫어요. B의 주장 역시 마음에 안 들어요. 제가 '차악인 B를 선택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 기권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투표로 저항심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투표율 자체가 저항심을 측정할 수 있는 근거라고 봤을 때, 최소한 투표율을 그 정당성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셈이죠."
그는 "국회에서도 국회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잖나"라며 "마찬가지로 투표율 50%와 득표율 50%를 정당성의 근거로 삼고, 이 둘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선거나 결선투표를 하면 된다. (젊은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분명한 점은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제는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보는 이유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지금처럼 사표가 많지 않고, 최소한 패거리 정치를 없앨 기본 여건이 마련될 수 있어요. 1, 2위가 결선투표를 하면 사민주의 세력 등 소수 정당도 충분히 의회에서 기반을 닦을 수 있다고 봐요. 범자유주의가 범집단주의에 맞서서 서구처럼 좌파와 우파로도 나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데 결선투표를 하나의 방법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전 변호사는 "지금 선거제도로는 정당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로 성숙하지 못하고, 영원히 '우상 민주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안철수 대표가 지난 2011년 정치권에 뛰어들어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하니, 느닷없이 수많은 학자·정치인·언론인들이 몰려들었잖아요. 그런데 당시 안 대표는 특별한 정책을 내놓거나 새로운 이념을 주창한 게 아니었어요. 오로지 "새정치를 하겠다"는 말 밖에는 없었죠.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처음 캠프를 차릴 때 보통 법조인 500명, 언론인 500명, 교수 2000명이 줄을 섰어요. 그 대다수가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한 분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네 민주주의는 백마를 타고 홀연히 나타날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설령 결단력 있고, 정직하고, 예리한 판단력을 갖춘 분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분 혼자만으로는 절대 우리 민주주의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성숙한 민주주의는 대중 민주주의, 곧 국민들의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