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청와대, 진경준 검사장 승진 때는 뭐하고

차관급 검사장은 대통령이 임면권, 또다시 인사검증 실패

시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투자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가 진상규명에 나섰지만, 정작 부실 검증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검사장으로 승진한 진 검사장의 공직자 재산신고를 청와대가 애초에 제대로 들여다봤다면 굳이 필요없었을 '뒷북' 대응을 하고 있어서다. 특히 검사장 임면권을 쥔 박근혜 대통령의 되풀이되고 있는 인사 실패가 또 도마에 올랐다.

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통상 검찰 인사는 대검철청 차장이 작성한 공무원 내부 인사자료를 검찰총장 결재를 받아 법무부에 보내는 수순을 거친다. 법무부 검찰과에서 자료를 검토한 후 법무부 장관 명의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전달하고, 민정수석실에서 동의 여부를 법무부에 전달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인사 대상자는 인사검증동의서를 제출한다. 재산과 병역, 출입국기록, 범죄 전력 등에 관한 개인정보 수집과 검증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공식이 아닌 내부 업무협조 차원에서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민정수석실의 판단은 고스란히 검사장 인사에 반영된다고 한다. 이때 민정수석실은 검찰 뿐 아니라 국가정보원 등 외부기관 자료를 토대로 동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검찰 뿐 아니라 대부분 직군의 고위공무원에 대한 인사검증 절차가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진 검사장이 승진할 때도 일반적인 수순에 따라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진 검사장은 지난해 2월 인사에서 차관급인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넉 달 뒤 보유주식 80만1500주를 126억원에 처분했다. 지난달 25일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진 검사장의 지난해 보유 재산은 156억 6560만원이었다. 이미 100억대 자산가였던 검찰공무원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몰랐을' 리 없어 보이는 이유다.

현재 진 검사장은 2005년 넥슨 비상장주식을 대학 동기인 넥슨 창업주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미공개정보를 받아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진 검사장이 넥슨 미국법인장을 지낸 이모씨로부터 주식을 넘겨받는 과정, 메이플스토리 등 게임 '대박'을 터뜨려 없어서 못 사던 유망주였던 넥슨 주식을 매입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한 특혜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투자 당시 아파트 한채 값에 육박하는 최소 4억원의 자금을 어디서 동원했는지 출처 의혹도 나온다.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 검사장의 재산형성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각 기관장들과 장차관급 인사 검증을 제대로 했어야 할 민정수석실의 '부실 검증'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100억대 주식부자인 검사가 고위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수십명 밖에 되지 않는 검사장 승진 대상자들 가운데 진 검사장의 주식 투자와 100억대 재산 사례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봐주기'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내 실세로 알려진 검찰 출신의 우병우 민정수석의 친분 혹은 지시에 따른 검찰 인사가 횡행하다는 것은 법조계 안팎에서 정설이 된 지 오래다. 우 수석이 인정하는 인물에 대해 굳이 들여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에는 우 수석과 끈끈한 인연을 지닌 검사들이 특수부에 포진됐고, 하명수사 지적이 뒤따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하겠다"며 검찰 개혁을 공약했지만, 법무부에도 80여명에 이르는 검사가 파견됐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정부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라며 "지난해 검사장 승진 단계에서 재산이 많은 점 등을 눈여겨 봤어야 하는데 검증 기능 자체가 안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며 "진 검사장의 승진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는 순간 청와대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에 곤혹스러울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2월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의 검찰 인사검증에 따라 유력 검사장 후보 2명이 탈락한 적이 있다. 이들은 재산형성 과정의 문제 뿐 아니라 음주운전 경력이 결정적 하자로 작용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로 이어졌지만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전 재산형성과정과 준법성 여부를 따져보는 일은 '관행'이 된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진 검사장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는 진 검사장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 결과를 우선 지켜본 뒤 처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7일 "진 검사장이 민간인 신분이 될 경우 처벌이나 처분이 어렵다는 것이니 법무부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며 "법무부에서 판단한 뒤 우리가 처리하든 할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진 검사장 의혹을 우선 처리하기로 하고 주식매입 경위에 대해 해명을 하라는 내용의 소명요구서를 지난 6일 진 검사장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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