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양구·화천·인제·홍천 선거구의 한 후보는 요즘 집에서 자는 날이 거의 없다. 5개 군의 경로당에서 잠을 자며 선거유세 강행군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는 "쉬지않고 하루 종일 달려도 전 지역구를 다 돌려면 이틀이 꼬박 걸린다"며 "하루에 약 300㎞를 이동한다"고 밝혔다.
공룡선거구라 불리는 철원·양구·화천·인제·홍천 선거구의 면적은 무려 5696.9㎢다. 서울시 면적의 약 10배, 가장 작은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을 선거구(6.01㎢)의 약 948배에 달한다.
말 그대로 광활한 선거구, 공식 선거 유세기간은 13일. 자주 가고 싶어도 1개 군당 최대 3번밖에 가지 못하는 빠듯한 유세 일정에 후보자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가는 날이 장날'
강원도 철원·양구·화천·인제·홍천 선거구의 후보자들에게는 일상이 '가는 날이 장날'이다. 세 명의 후보자들은 군마다 돌아가며 열리는 장날엔 무조건 달려가기 때문이다. 거대한 선거구에서 효율적으로 유세하기 위해서다.
지난 6일 수요일 오후. 후보자들은 모두 '홍천 5일장'을 찾았다.
"오늘 고들빼기가 맛있어", "병원 갔다 오는가?" 5일장이 열린 홍천 중앙시장은 북새통이었다. 시끌시끌하던 시장의 데시벨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 외곽에 선거차량이 들어서고 각 후보들의 선거음악이 흘러나왔다.
유세를 지켜보던 최문자(56)씨는 "선거구가 하도 커서 후보자들도 유세하는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유진(21)씨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데, 선거기간에 후보자들도 자주 보지 못하니 누구를 찍어야할 지 더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선거구가 커서 생기는 어려움은 유세 기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의원이 되도 의정활동이 힘들 수 밖에 없다. 홍천과 철원·양구·화천·인제는 생활권이 다른데 한명의 의원이 5개 군을 두루두루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선거구를 왜 그렇게 정했어!" 홍천에서 50년을 거주한 김금자(72)씨는 "왜 저 멀리 있는 철원과 같은 선거구로 묶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큰 소리를 냈다.
5개 군이 합쳐져 생긴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 선거구는 '인구'만을 기준으로 한 선거구 획정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홍천·횡성 선거구는 인구 하한선(13만 8984명)에 미치지 못해 쪼개진 것이다. 홍천은 철원·양구·화천·인제 선거구에, 횡성은 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 통합됐다.
이런 불만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후보자들은 지역 통합 공약과 성실한 의정활동을 약속하고 있다.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의 황영철 후보는 지역구 기초의원들 대다수가 여당 소속인 것을 강조한다. "5개 군의 군수, 도의원 7명 중 6명, 군의원 35명 중 21명이 새누리당 소속입니다. 이 분들과 함께 모여 자주 소통하며 5개 군을 통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의원직 탈환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조일현 후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의 공천제 폐지를 주장한다. "선거 때마다 지역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초지자체장과 의원의 공천제가 없어져야한다"며 "5개군이 따로 노는 손가락 정치가 아닌 하나로 뭉친 손바닥 정치로 화합을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 5번째 대결, 승자는 누구일까
황영철, 조일현 후보는 이번 20대 총선으로 3선에 도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황 후보는 18, 19대 국회의원을, 조 후보는 14,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두 후보 모두 홍천 출신이다. 한편 정해용 후보는 강원경찰청장 출신으로 철원에서 나고 자랐다.
대표 공약을 묻는 질문에는 각 후보가 서로 다르고 특색 있는 공약을 제시했다.
조일현 후보는 5개 군의 생업이 모두 농업이라는 데에 주목해 농산품의 생산-가공-판매의 '식품산업 3단계 모델'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한다. 조 후보는 "가짜 음식이 많은 중국시장에 믿을 수 있는 우리나라 음식들을 현지화해 수출하면 일자리와 소득을 늘릴 수 있다"며 농업정책을 만든 경험과 중국통임을 강조했다.
정해용 후보는 접경지역의 규제완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정 후보는 지난 6일 후보자 합동 토론회에서 "규제 완화로 확보한 토지에 기업을 유치해 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