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많은 달력 보면 원망스러워"
-세상 싫어도 투표 안해 "의미 없어"
-"친노동자당? 대기업 노동자만 대변"
-기득권층, 노동자들 격차악용 이간질
-배신투표 횡행, 선거는 부자들 잔치?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민철 CBS 기자
◆ 권민철>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 주제 뭘 잡으셨어요?
◆ 권민철> 저희 뉴스쇼 팀 앞으로 한통의 손 편지가 온 게 있는데, 그걸 가지고 오늘 이야기 풀어볼까 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 제보가 꽤 많이 들어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띈 거군요?
"달력중간에 5월 5일이다, 6월 6일이다. 3월 1일이다. 이런 빨간색을 뭐 하러 만들어 놨냐는 거예요. 우리 생각에는. 법정휴일이 우리한테는 5월 1일 밖에는 없거든요. 차라리 5월 1일을 빨간색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검은색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래서 그걸 방송에서 이슈화 시켜주면 법이 바뀌지 않겠냐 이 생각을 한 거에요."
◆ 권민철> 30년간 주로 영세기업에서만 근무해 온 분인데, 한마디로 자기의 달력은 다른 사람들의 달력과 다르다 그런 내용입니다. 오늘 훅뉴스는 총선 앞두고 선거와 서민의 삶, 그 관계 속으로 훅 들어가 볼까 합니다.
◇ 김현정> 좀 무거운 주제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시즌에 꼭 한번 생각해 봐야할 내용일 거 같습니다. 아까 제보자의 이야기부터 해보죠. 이해가 안가는 게 법정휴일이 5월 1일 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요?
◆ 권민철>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제보자와 같은 우리나라 노동자들,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일, 그러니까 회사에서 돈을 받고 쉬는 날은 주휴일(일요일) 빼고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 단 하루뿐입니다. 근로기준법에 그렇게 명시돼 있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럼 달력에 표시된 빨간날들은 뭐에요?
◆ 권민철> 보통 빨간 날은 국경일과 공휴일이죠? 국경일은 3.1절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해진 휴일입니다. 이에 비해 공휴일은 '공휴' 그러니까 관공서가 쉬는 날인데, 대통령령(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해진 빨간 날입니다. 국경일외에 어린이날, 석탄일, 성탄일 등이 여기에 포함되죠. 그런데 이런 날들은 사실 쉬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 법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는 노동자들은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그렇게 하기로 약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장치가 없는 회사들은 그러지 못하고요. 그래서 이걸 문제 삼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 김현정> 저도 처음 알았네요. 근로기준법에는 유급 휴일이 근로자의 날 하루뿐이고, 크리스마스 이런 거는 단체협약에 의해 쉬는 날이다?
◆ 권민철> 빨간날이 1년에 14일 정도 되는데 다 못 쉰다는 거죠. 한국노총 부천 상담소 측 이야기입니다.
"10만 명 정도 가입돼있는 인터넷 노동 상담 사이트가 있는데요, 여기에 빨간 날에 왜 우린 유급 휴일로 안 쉬냐에 대한 질문이 많이 들어와요. 민간기업에서 공휴일로 쉬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상담으로 많이 들어오죠."
◆ 권민철> 그렇습니다. 물론 법에는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보면 '근로자가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사용자는 거부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투표하게 해 달라고 시간을 '청구'할 근로자는 없겠죠?
◇ 김현정> '청구하는 경우에 한 한다', 그게 전제조건이군요. 물론 사전투표제도라는 보완책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권리 행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니까 투표율이 낮은 거 아니겠어요?
◆ 권민철> 최근 실시한 조사 보더라도 중소기업 근로자 37%는 선거 당일 출근한다고 했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시죠.
"제가 쉬다가 여기 나온 지 한달 안 되가지고. 그런데 다른 데서는 투표 못할 때가 많잖아요, 요즘. 관심도 없고 시간 내기도 좀 그렇고…."
"그럼요. 선거 날이라서 빼주는 게 없어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게 돼서 당일엔 투표를 못하지 않을까…."
◇ 김현정> 현장에서 만난 분들이군요. 이 분들이 선거날이나 또 남들 노는 빨간날에 똑같이 쉴 수 있으려면 법을 개정하는 방법밖엔 없는 건가요?
◆ 권민철> 빨간날은 쉬는 날이라고 법으로 딱 정해 놓으면 설사 노조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차별받지 않고 쉴 수 있게 되겠죠.
◇ 김현정> 그러면 그동안 그렇게 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한번도 없었던 건가요?
◆ 권민철> 물론 있었습니다. 이번 만해도 총선 앞두고 소외계층 선거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받도록 하겠다는 공약들이 있습니다.
◇ 김현정> 실제로 있었다는 거에요?
◇ 김현정> 그러면 노동자에게 처음 소개했던 그 제보자가 원하는 바로 그 내용이겠네요?
◆ 권민철> 맞아요. 모든 노동자에게 연간 30일 이상 유급 휴가를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방법을 보니까 '국경일 및 공휴일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겠다고 돼 있더군요.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6개월 이상 재직한 노동자에게 공휴일, 국경일을 유급휴일화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 김현정> 그러면 이런 공약들이 나왔을 때, 과거에도 그렇고, 노동자들이 그 쪽으로 좀 표를 줬으면 해결됐을까요?
◆ 권민철> 하지만 하층 노동자들일수록 투표 안하는 경향이 있죠. 고질적인 정치혐오증 때문에요. 그 것이 다시 정치 무관심을 낳고, 정치 무관심이 기존 정당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도록 방임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거죠. 어느 중소기업 다니는 분의 이야기 좀 충격적인데 들어보시죠.
"올해나이 54살이요. 투표권 주어지고 처음 투표하고 그 다음부터는 안했어요. 국회의원선거도, 지방선거도, 대통령 선거도 안해요. 제가 하기 싫어서 안하는 거죠. 정치에 관심도 없고, 해봐야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아요. 다 지들 먹고 살라고 지들끼리 해쳐먹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안해요 일부러."
◇ 김현정> 아 거친표현들이 나오는데, 사실은 일상적으로 듣는 이야기에요. 우리나라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가 많은데, 이렇게 다들 자포자기 상태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 권민철> 맞아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868만명입니다. 사내하청,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합하면 1200만명이에요. 최저임금 미만의 봉급을 받는 사람들도 222만명이나 되고요. 이들이 만약에 똘똘 뭉치면 사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죠. 심지어는 친노동자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아까 말씀드린 제보자의 경우인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그 당들은 보면 소수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한다고 말은 해요. 그렇지만 그 노동자들이 누구나면 대기업 노동자들이에요. 우리 소기업 노동자들, 힘없는 개인 노동자들은 대변을 못해요. 집권당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 김현정> 노동자들이 노동자 권익을 지키는 정치적인 행위를 못하는 거군요.
◆ 권민철> 전문가들은 이를 '계급배반 투표'라는 말로 설명을 하더군요.
◇ 김현정> 계급배반 투표? 좀 어려운 말입니다.
◆ 권민철> 계급투표의 반댓말인데요. 계급투표라는 건 유한계급 그러니까 가진 사람은 부자정당에, 무한계급 즉 없는 사람은 개혁정당에 투표하는 거죠. 계급배반 투표는 없는 사람들이 부자당을 찍는 걸 말합니다.
◇ 김현정>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까?
◆ 권민철> 노동자들 내부 계층간 격차가 아주 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노동자라도 누구는 연봉 1억씩 받고 누구는 2000만원도 못받고, 누군 정규직이고 누군 비정규직이고, 그러면서 노동자들간 갈등, 배신감 이런 게 심해지고, 이런 상황을 기득권 계급이 이용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계급을 배신하는 투표를 한다는 겁니다. 한신대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의 설명 들어보시죠.
"노동자 계급 하층으로 내려가면 조직돼 있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노조의 지원을 못 받거나 나이가 많거나 학력이 모자라거나 이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격차를 자본이 이용합니다. 현재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금수저와 흙수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극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끊임없이 민주노총, 대기업 노동조합에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체계적으로 사회적으로 유포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듣고보니 그러네요. 보통 현대차 노조하면, 귀족노조라고 언론에서도 이름 붙이고요. 같은 노동자들로선 비애감, 박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겠어요.
◆ 권민철>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귀족노조라는 말부터가 좀 수상합니다. 현대차 노동자가 연봉 1억 원을 받는 건 철야작업이 많은 자동차 업종 특성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귀족이라는데, 귀족이 철야 노동하나요? 잠 안자고 일하는 귀족은 없을 겁니? 귀족노조라는 말 저의가 있는 말입니다.
◇ 김현정> 정치적으로 의도가 있다는 거에요?
◆ 권민철> 노동자들이 뭉치면 세상이 뒤집어지니까 기득권 계급이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키고, 특히 하층 노동자들에게 상층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려고 귀족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는 겁니다.
◇ 김현정> 그래서 계급투표 대신 계급 반대투표가 반복되고 있다?
◆ 권민철> 사실 계급투표의 전형이 바로 정당별 비례대표 투표입니다.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변할 다양한 정당에게 의석을 주자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총선 앞두고 선거구 조정하면서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수가 7석이나 줄었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대의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지적도 있었어요?
◆ 권민철> 아마 이번에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를 교차로 하겠다는 유권자들이 많아졌다는 여론조사결과도 그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 사회단체는 정당투표 참고자료를 만들어서 대응하고 있는데요. 어느 당이 노동자에 우호적인가 표로 정리한 건데 노컷뉴스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 김현정> 계급투표라는 말 저는 낯설게 들었습니다만,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문제에요. 노동자 계급 뿐 아니라, 주부면 주부대로,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내 권리를 찾기 위한 투표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고민들 해보시기 바랍니다. 힘이 있건 없건, 돈이 많고 적건, 누구나 한표씩 갖는 게 투표아니겠습니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이제 선거는 빽 있고 돈 많은 부자들의 잔치로 남겨지는 게 아닌가. 이걸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겁니다. 오늘 사전투표잖아요. 가정에 배달된 선고 공보물 꼼꼼히 살펴보시고 부디 투표에 나서시길 마지막으로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