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꼼꼼한 매뉴얼대로 하지 못하면, 정일선 사장은 수행기사들에게 'X신같은 X끼"라며 폭언·폭행은 물론 경위서를 쓰게 하고 벌점을 매겨 감봉까지 했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최근 재벌가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행기사 근무환경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이 X끼야"는 이름, 시종일관 '욕설'…"조인트 까고 2~30대 주먹으로 내리쳐"
수행기사 업계에서 "꽤 잔뼈가 굵다"는 A씨에게 몇년 전 정 사장의 폭언과 폭행 탓에 하루하루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출근 전 정 사장의 속옷과 양말, 운동복 등을 챙기는데 속옷은 군대에서 접듯이 세 번 각 잡고 밴드 쪽으로 말아 올려 개야 하고, 가방에 넣는 특정 주머니가 있다. 양말이나 다른 옷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다른 데 넣으면 맞는다"는 게 그의 얘기다. 살얼음판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X끼야'라는 욕설은 그 자체가 호명으로 받아들여졌다는 A 씨는 "인격이라는 것은 절대 없다"며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면 "누가 니 맘대로 하래? X신 같은 X끼야, 니 머리가 좋은 줄 아냐? 머리가 안 되면 물어봐"라며 인격 비하적인 언행을 퍼부으면서 주먹으로 머리를 쾅쾅 내리쳤기 때문이다.
그는 "정일선 사장이 권투를 해서 맞으면 정말 아프다"면서 "조인트 까이고(정강이 차이고) 많이 맞을 때는 2~30대씩 주먹으로 머리를 연속으로 맞았다"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던 기억을 털어놨다.
정 사장의 전 수행기사들에 따르면, A4용지 140장에 달하는 정 사장만의 '갑질 매뉴얼'이 있다.
◇ "5분 늦을 때마다 한 대씩" 구타는 일상… 작년 '재벌家 수행기사' 방송 뒤 "폭행↓
"차가 막혀 (약속장소에) 늦으면 당연히 욕먹고, 차가 안 막혀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도 욕먹는다"는 게 전 수행기사 B 씨의 얘기다. "니가 뭔데 왜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나를 기다리게 하느냐는 것"이다.
"맞는 것도 일상"이었다는 그는 "챙길 게 워낙 많다 보니 운동갈 때 머리띠나 양말 등을 하나씩 빠뜨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난리가 난다"면서 "이리 와, 이 X끼, 병신 X끼 이런 것도 안 챙기냐, 그럼 운동 어떻게 해? X신아"라면서 정강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고 말했다.
전 수행기사 C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정 사장 본인이 늦게 나와 놓고서는 "시간 걸리는 거 뻔히 아는데 너 왜 나한테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말 안 했어. 5분 늦을 때마다 한 대씩"이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현대비앤지스틸 기사면접을 봤던 한 수행기사는 면접 당시 사전에 "'혹시라도 주먹이 날아가도 이해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정 사장이 최근에는 "때리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한 공중파 방송에서 재벌가 수행기사들의 폭로가 쏟아진 뒤부터 행동을 조심해 폭행만큼은 잦아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욕설과 인격비하 발언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 매뉴얼 못 지킬 때마다 경위서 쓰고 벌점 매겨 감봉 '강화'
대신, 경위서와 감봉제가 강화됐다. 이전에는 사고를 내거나 중대한 잘못을 했을 때만 경위서를 썼다면 VIP 매뉴얼을 지키지 못할 때도 건건이 경위서를 쓰고 벌점을 매겨 이에 따라 감봉을 하는 것이다.
△ 0~10점미만 '정신교육' △ 10~ 20점미만 '견책' △ 20점~ 30점미만 '감봉 1개월'+휴일 무급근무(7시-12시) △ 30점~ 40점미만 '감봉 2개월'+ 휴일 무급근무(7시-19시) △ 40점~ 50점미만 '감봉 3개월'+ 휴일 무급근무(7시-23시) △ 50점 이상 '퇴직' 식으로 수행기사에게 페널티가 적용된다.
또 다른 수행기사 C 씨는 "최근에는 때리지는 않지만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등 사장의 심기를 건드리면 퇴근하는 기사를 잡아두고 두세 시간 동안 계속, 새벽이 될 때까지 서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 시간이 보통 오후 9시~ 11시인데, 욕설과 함께 잘못한 것을 추궁하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혼을 낸다"고 덧붙였다.
또 "매뉴얼은 수행기사의 업무 적응을 위해 총무 담당자가 만든 것이고 상벌제도 또한 사실이고 경위서를 쓰게는 했지만 감봉 조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정일선 비앤지스틸 사장은 지난 7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고객 여러분과 성장하는, 신뢰와 혁신으로 100년 역사를 창조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