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외 노동자' 가사도우미…노동자 되고픈 바람

[노동의 그늘 속 가사도우미 ⑤]가사도우미도 新하녀도 아닌, 노동자로 서는 길

'新 하녀'. 소변이 급해도 일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꽝꽝 언 밥을 먹고, 비싼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의심을 받기 일쑤다. 다른 가정의 가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가사도우미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속에 일하면서도 '근로'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CBS는 63년째 법 앞에 실종된 가사도우미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들이 노동자로 바로 서기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모님이 만족할 때까지" 21세기 新하녀 일기
② 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③ "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④ 도곡동 '사모님'에게 가사도우미는 '일회용'?
⑤ 가사도우미도 新하녀도 아닌, 노동자로 서는 길


서울 강남의 한 가사도우미 소개업소.

일을 구하러 온 40~50대 여성들 사이에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중소기업을 퇴직한 후 가사도우미로 생계를 꾸리는 박모(43)씨.

며칠째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박씨는 "에어컨이나 침대 메트리스 청소, 운전 등 여자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가사도우미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남성들이 최근 늘고 있다는 게 업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처럼 가사도우미가 일부 여성들의 날품팔이가 아닌 직업으로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가사도우미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은 여전히 소걸음 중이다.

◇ 뒷방 신세 가사도우미 보호법

8일 학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협약국들을 상대로 가사노동자에게 노동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지만 국내에서 가사노동은 여전히 근로기준법 '열외' 대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가사노동과 관련한 법 제정에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초 가사 도우미 보호대책을 내놓으면서 6개월 내 법률안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노동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대책은 20대 총선 후로 밀렸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인영 의원이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을 배제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과 함께 4대 보험 적용 등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가사도우미 관련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은 현실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박사는 "(입법 추진 당시) 직업소개업소들의 반발이 대단히 심했다"며 "민간 시장에 왜 규제를 하려 하느냐며, 규제 대 반규제 식으로 프레임을 형성해 목소리를 높였다"고 말했다.

◇권익보호 첫단추는 '근로 계약서'

당장의 제도적 개선이 쉽지 않다면 가사도우미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권익 보호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통상 직업소개소에서 고객(이용자)을 소개받아 그로부터 직접 업무 내용을 지시받는 가사도우미들은 누구와도 고용 계약을 맺지 않는다.

노무법인 새날 정명아 노무사는 "집주인들은 가사도우미를 고용해도, 본인들이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라고 간주할 뿐 그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한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가사노동자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경제활동'을 하는 근로자"라며 "이들 또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필리핀은 2013년부터 가사도우미가 질병이나 상해를 입은 경우 사용자가 의료적 지원을 하도록 하고, 일정 금액 이하의 임금을 받는 경우 사용자가 보험료를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또 스페인은 2011년 가사 노동 업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성별, 인종, 출신지역, 연령, 종교 등에 따른 차별과 괴롭힘을 금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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