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심장' 정부서울청사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부 여당 테러방지법 통과 전력 쏟을 때 첫 침입

공무원 시험을 치른 뒤 정부서울청사 인사혁신처에 무단침입해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시킨 20대 남성 송씨가 구속됐다. (사진=황진환 기자)
북한의 도발 위협과 박근혜 대통령 해외 순방으로 테러경계 강화 지시가 떨어진 시기에 정부업무 핵심 기능이 몰려있는 정부서울청사는 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에게 허무하게 뚫렸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테러범이 정부청사에 폭탄을 설치해도 전혀 모를 판"이라며 정부의 허술한 보안의식을 비판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내부 공모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조만간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청사 건물 외곽부터 1층 보안검색대, 엘리베이터 앞 스피드게이트, 해당 사무실 문을 아무 제지없이 통과하는 게 과연 가능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과 송씨의 행적을 정리했다.

◇ 공무원 출입증 어떻게 훔쳤나?

지난달 5일 송모(26)씨는 '2016년 국가직 지역인재7급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렀다.

송씨는 시험일 이전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총 5차례 청사 건물에 불법으로 침입했다. 공무원 출입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송씨는 경찰조사에서 "3월 5일 이전에 시험문제지를 훔치기 위해 청사에 3차례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24일과 26일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로 합격자 명단 등을 조작하기 전에 이미 3차례나 외부인이 아무 제지없이 청사 건물을 휘젓고 다닌 셈이다.

송씨는 시험문제지를 유출하기 위해 청사에 들어왔던 3월 5일 이전에 이미 훔친 공무원증 1개를 소지하고 있었다.

송씨가 최종 침입 때까지 가지고 있던 공무원 출입증은 총 3개. 경찰수사 결과, 모두 1층에 있는 공무원 체력단련실 락커에서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락커문은 모두 열려 있어 출입증을 훔치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최초에 공무원 출입증을 훔치기 위해 어떻게 청사 건물로 들어와 체력단련실로 향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종 수사결과 때 밝히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 최초 청사 건물에 어떻게 들어왔나?

정부서울청사 체력단련실 라커에는 전자열쇠 등 잠금장치가 전혀 없다. (사진=조기선 기자)
정부서울청사에 입주한 정부부처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4-5단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외곽에서 건물로 들어갈 때는 출입증을 가지고 정문을 통과하든지 아니면 후문에 있는 방문객센터에서 신분증을 맡긴 뒤 방문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방문증을 접촉하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다. 특히 정문쪽에는 금속탐지기(MD)가 설치돼 있어 보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건물로 들어가는 후문 철문쪽 출입구는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하다. 의경이 맨눈으로 출입증만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여러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갈 경우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후문철문을 통해 건물로 진입하면 검색대가 나오지만 이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체력단련실로 갈 수 있다.

경찰은 공무원 필기시험일인 3월5일 이전에 송씨가 어떤 경로로 체력단련실에 들어갔는 지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하지만 내부 공모자 수사를 진행중이어서 최초 침입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만능키 출입증' 분실 공무원 3명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나?

송씨가 대담하게 5차례나 정부청사를 드나든 데는 훔친 공무원 출입증 3장이 결정적이었다. 공무원증만 있으면 16층 인사혁신처는 물론 모든 층에 있는 정부부서를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다.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청사관리소 직원과 경찰 파견 인력이 엘리베이터 앞 스피드게이트 검색대를 지키고 있지만 유명무실했다.

출입증을 검색대에 접촉하면 해당 출입증 소지자의 소속과 이름, 얼굴 사진이 게이트 위 모니터상에 띄워지고 실제 출입자와 비교하도록 보안 매뉴얼은 짜여져 있지만 출입 인원이 많아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출입증을 분실한 공무원 3명이 분실신고만 제대로 했더라면 보안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분실 출입증이 접촉되면 검색대에서 경고음이 발생하고 검색대 자체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 김성렬 차관은 6일 브리핑을 열고 "출입증을 분실한 공무원이 누구인지 아직 파악이 안됐다"며 "매뉴얼에 따르면 출입증이 분실되면 각 부처에서 방호시스템으로 연결돼 (분실된 출입증으로)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이어 "분실된 출입증은 보안검색대에서 소리가 나고 문도 열리지 않는다"며 "여러가지 이유로 신고가 지연된 경우에는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증을 잃어버린 해당 공무원이 분실신고만 제대로 했어도 송씨의 무단침입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출입 보안에 대한 공무원들의 안일함이 다시한번 확인된 셈이다.

경찰은 송씨가 소지하고 있던 통일부 공무원 출입증을 포함해 3개를 압수했다. 또 분실신고를 하지 않은 공무원 일부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했다.

◇ 사무실 잠금장치 열려 있었나? 비밀번호 1234처럼 단순했나?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 도어락 (사진=조기선 기자)
공무원 출입증을 가지고 지난달 24일과 26일 16층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까지 올라간 송씨는 잠겨진 사무실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인사혁신처는 이달 9일 세종시로 이전하기 위해 이삿짐을 싸고 있어 사무실 문이 처음부터 열려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인사혁신처와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채용관리과 사무실은 4자리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리는 디지털 도어락으로 시건장치를 해뒀다.

가능성은 4가지.

첫째는 비밀번호를 '1111'이나 '1234' 처럼 비교적 쉬운 것으로 설정해 송씨가 이리저리 눌러보며 열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다른 정부부처 역시 인사철이나 인력이동 전후 사무실 비밀번호를 쉽게 공유하기 위해 단순한 번호를 지정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두번째는 시험문제지를 훔치기 위해 3월5일 이전에 이미 정부청사에 침입했던 송씨가 출근시간대나 점심시간 이후 다른 직원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장면을 엿봤을 가능성이다.

경찰 관계자가 "16층에 있는 CCTV 화면을 전부 확보해 송씨가 누구와 마주쳤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세번째는 사무실 비밀번호를 메모 형식으로 출입문 옆에 붙여 놓은 것을 송씨가 발견했을 가능성이다.

마지막은 내부 공모자가 비밀번호를 송씨에게 알려줬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송씨의 침입 동선을 추적해보면 한번에 사무실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머뭇거린 흔적이 나온다"며 "이 때문에 내부 공모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송씨의 통화내역 조회결과가 나오는 대로 단독범인지 내부 공모자가 있는지를 확인해 조만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컴퓨터 비밀번호 어떻게 풀었나?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송씨가 7급공무원 시험 채점과 합격자 관리를 맡는 담당 공무원 책상을 어떻게 알고 접근했는지도 의문이다.

송씨는 경찰에서 "인사혁신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직도를 보고 담당자를 알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혁신처 사무실 밖 벽면에는 사무분장표와 함께 공무원들의 사진과 이름이 기재돼 있어 송씨가 이를 보고 담당자 컴퓨터를 특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컴퓨터 비밀번호를 해제했냐는 것.


국가정보원의 정부부처 정보보안 지침에 따르면 공무원 컴퓨터는 ▲부팅 단계 시모스(CMOS) 암호 ▲윈도 운영체계 암호 ▲화면보호기 암호를 모두 설정해야 한다. 또 중요한 문서에는 별도의 비밀번호도 설정해야 한다.

경찰이 압수한 송씨의 노트북에서는 리눅스 운영체제 프로그램과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 여러개가 발견됐다.

송씨는 경찰에서 "컴퓨터 운영체제를 아예 리눅스로 접속해 비밀번호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송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사이버수사대에 시현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시모스 암호와 화면보호기 암호는 어떻게 해독했는지는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다.

경찰은 노트북에서 발견된 다른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으로 시모스 암호 등을 풀었는지도 확인중이다. 하지만 중요 문서에 걸어야 하는 별도의 비밀번호는 설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7급공무원 채점표와 합격자 명단 등의 문서에는 별도의 비밀번호가 설정되지 않았다"며 "많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 마지막 침입 때 9시간 넘게 상주…야간 순찰자는 뭐했나?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사진=자료사진)
시험문제지를 빼돌리는 데 실패한 송씨는 지난달 24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에 침입했다.

인사혁신처는 24일 밤 11시35분부터 58분까지 약 23분간 주무관 컴퓨터가 외부인에 의해 로그인된 사실을 발견했다.

또 26일 밤 9시5분부터 이틑날 새벽 5시35분까지 주무관과 사무관의 컴퓨터 두 대가 접속된 사실도 확인했다.

인사혁신처 황서종 차장은 6일 "사무관과 주무관 두 대의 컴퓨터에 누군가 접속한 흔적을 발견했다"며 "26일에는 (송씨가) 주무관 컴퓨터에서 사무관 컴퓨터로 자료를 옮기며 수정작업을 했고, 출력물을 문서파쇄기로 없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씨는 마지막 침입일인 26일 밤 시험점수를 조작하고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는 작업을 하면서 아침 무렵까지 9시간 넘게 청사 사무실에 머물렀다.

하지만 야간 순찰자는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또 복도에도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청사경비대나 보안직원들은 송씨의 이상 행동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최초로 청사에 침입할 때부터 합격자 명단을 조작하고 나올 때까지 약 한달간 정부서울청사는 말 그대로 '뻥' 뚫려 있었다.

정부서울청사는 국가중요시설 '가'급(최상급) 보안시설로 정문과 후문은 서울지방경찰청 청사경비대 소속 의경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최초 침입도 막지 못했다.

또 경찰은 물론 청사관리소 직원과 보안 요원들도 문서가 조작된 사실이 발견된 지난달 30일까지 송씨의 침입 사실을 전혀 몰랐다.

특히 처음으로 청사에 침입한 시기는 정부 여당이 테러방지법 통과에 사활을 걸고 야당을 압박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대남 위협이 높아지면서 전 부처에 테러 경계 강화 지시가 내려진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기본적인 정부청사 보안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테러방지법은 왜 통과시켰냐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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