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세 사람은 유명 영화 감독인 병찬(배성우 분)과 딸 나래(정슬기 분) 그리고 남자 고등학생 세영(정성일 분)이다. 영화는 병찬이 오디션을 위해 세영을 집으로 초대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클래식한 음악과 함께 초반부터 긴장감이 흐른다. 카메라는 각자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듯한 두 남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먼저 속내를 터뜨린 쪽은 병찬이다. 그는 세영에게 나래와의 관계를 추궁하고,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동시에 거친 폭력성을 드러낸다.
이후 전세가 뒤바뀐다. 나래의 남자친구인 세영이 아버지 병찬을 추궁한다. 결국 병찬은 자신이 필름에 기록한 '고백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세영에게 들키게 되고, 두 사람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내내 나래는 특정 이미지로 등장할 뿐이다. 대사는 거의 없고, 실제보다는 사진과 영상 속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잔혹한 복수극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 역시 딸이자 여자친구인 나래다.
두 남자는 나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로를 추궁하지만 둘 중 누구도 진실로 나래를 위했던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의 '아끼는 행위'는 나래에게는 폭력적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짓밟혔을 뿐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와 공간 활용이다. 영화는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가 아님에도 '병찬의 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몰입감을 더한다.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 이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밀실처럼 불균형적이고 고립되어 있다. 두 남자는 욕실과 지하실 그리고 거실 등으로 장소를 옮기며 끊임없이 서로를 증오한다. 이들이 목적 잃은 복수극을 벌이기에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카메라로 고백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각 인물들은 자신의 치부나 속내를 고백할 때 사람이 아닌 카메라에게 한다. 그것은 때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집착이기도 하고, 감정 없는 사물을 향한 배설이기도 하다. 카메라 속에 담긴 폭력의 현장들이나, 죄책감 가득한 고백들은 어딘지 모르게 더 이질적이고 공허하다.
84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고백할 수 없는'은 인간의 일그러진 폭력성을 압축적으로 조명한다. 그것은 가족 간, 남녀 간 혹은 세대 간도 예외는 아니다.
이 미스터리 복수극의 당사자들처럼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로는 외면하고 지나치거나 무시한다. 내가 남에게 입은 상처만 기억할 뿐, 남에게 입힌 상처는 도리어 잊어버리기 일쑤다.
'고백할 수 없는'이 우리를 '고백하게 만드는' 영화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