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은 지난해 23억6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1989년 이후 26년만에 기록한 적자다.
점포 최적화란 이름으로 추진된 점포줄이기에 따라 전국 지점 숫자도 계속 감소 추세다.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이 제일은행을 인수했을 당시 지점 숫자가 천개에 이를 정도로 고객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한국SC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다운사이징을 거듭해 2005년 지점 숫자 400여개에서 2015년말 현재 250개로 대폭 감소했다.
신한과 국민, 우리금융그룹 등이 은행통합을 통해 덩치를 키워갈 때 한국SC은행만 반대방향으로 역주행한 셈이다. 그 결과는 시장점유율 급락이라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SC은행은 한국내 다수의 은행 이용자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기억된 '제일은행'이란 명칭을 버린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제일은행' 명칭을 포기함으로써 은행이 가지고 있던 한국금융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붕괴됐고 이는 곧바로 은행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이 됐다는 것이 내부의 분석이다.
SC은행 한 중간간부는 6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일은행이란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로 한데 대한 은행내 기대감이 크다"면서 "제일은행으로 다시 부를 수 있게 돼 직원들은 자긍심을 가지게 됐고 영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 변경은 지난해 고객 등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SC제일은행'이 친밀도(53.2%)에서 1위를 차지하자 경영진이 결단을 내린 결과다.
'SC은행'에서 'SC제일은행'으로 은행명을 바꾼 건 박종복 은행장이다. 지난해 1월 외국계 은행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박 행장의 경영노선은 '현장경영과 토착경영'으로 기존의, SC그룹이 보유한 글로벌네트웍을 강조하던 경영방침과는 180도 달라졌다.
외국적 문화에 입각한 은행경영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면서 제일은행 내부에서는 한국적 색깔와 분위기를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제일은행 직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한국에서 은행업을 하면서도 한국적 은행문화나 영업문화를 도외시하는 다분히 일방적인 경영방식이었다.
제일은행 인수 당시부터 본사에서 파견된 CEO를 통해 이질적인 은행문화가 행내로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수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본사의 경영방식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노출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공공연히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으며 이를 하나로 모아내는 구심점으로 한국인 행장이 자리를 잡았다. 박종복 행장은 지난해부터 은행 내부에 과감한 변화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쇄신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CEO를 바꾸고 제일은행이란 이름을 되찾은 제일은행, 10년에 걸쳐 해체의 길을 걸은 제일은행만의 문화를 되살려낼 지 여부는 은행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해 줄 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