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사를 보자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과 베트남에서 날아왔던 <씨레이션>이 떠올랐다. 1978년 발표돼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머나먼 쏭바강>은 그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장안의 화제였다. 박영한은 베트남 파병 전투병 출신이었다. <머나먼 쏭바강>의 주인공 황일천 병장은 베트남 여인 '빅 뚜이'와의 사랑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용서를 이야기 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위에 구축된다는 줄거리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던 1965년 가을에서 1973년 봄 사이, <씨레이션>이라 부르던 커다란 나무상자가 시골집으로 배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식을 베트남 전쟁터로 보낸 부모 앞으로 배달되 온 상자 속에서 신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통조림과 초콜릿, 설탕, 커피, 껌, 크래커, 소시지, 치즈 등이 가득 들어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생전 처음 쓰디쓴 커피 맛을 보았는가 하면 초콜릿에 흥분했다. <씨레이션> 상자를 둘러싸고 웃음꽃을 피우던 그 시간, 20대 아들은 열대의 정글 속에서 베트콩들과 불꽃 튀는 교전을 벌이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베트콩이 출몰한 민간인 마을을 습격해 총과 수류탄으로 초토화시키는 줄도 몰랐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32만여 명의 장병을 파병시켜 북베트남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게 했다. 그때 전사한 장병 수가 5099명이나 됐다. 장병들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장병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베트남 민간인 숫자가 더 많았다. 80여 건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9천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죽었다.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9천여 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을 위해 우리나라 몇몇 NGO가 베트남 현지에 추모비를 세우고 피해 주민과 더불어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의 다리를 놓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민간단체의 진정어린 노력으로 베트남 사람들 가슴에 박혀있는 한국군에 대한 악몽의 파편이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쩐꽝티 기자가 '태양의 후예'가 베트남 땅에서 방영되는 것은 '오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아직 그들 가슴에는 한국군에 대한 악몽같은 트라우마가 박혀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동맹국(당시 월남)인데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병했고,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사살한 것이라는 해명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쏭바강>의 베트남 여인 ‘빅 뚜이’는 이렇게 노래한다.
'강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내 죽어 달님 되리. 강물 내력 비추는 달님 되리. 강물 속 그리운 얼굴 비추는 달님 되리.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다행히 '한-베트남 평화재단 건립추진위원회'가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한국의 역사적 책임을 반성하자는 취지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가 제작 중인 <베트남 피에타상像>은 한국군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9천여 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의 영령에게 받치는 헌사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베트남 피에타상>이 상처 입은 피해 가족들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고 평화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양의 후예'가 아무리 평화와 사랑을 담고 있을지라도, 베트남 사람들의 심장 속에 잠들어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쩐꽝티 기자의 '오욕'이라는 표현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 정당하다는데 공감하게 된다. 일본인이 제작한 일본군 홍보 드라마가 한국과 중국에서 방영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