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목)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KBS 스페셜'에서는 1896년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랑이 사진을 바탕으로 호랑이 사냥의 슬픈 역사를 추적한다
호랑이는 단군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과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호랑이의 나라 혹은 호담국(虎談國)으로 불렸는데, 울주 반구대 암각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 그림은 1만 년 전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 호랑이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내용이 무려 635번이나 언급된다. 그야말로 조선은 호랑이 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 사이에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반도 숲을 호령하며 우리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던 호랑이는 현재 빛바랜 사진과 가죽으로만 그 모습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KBS 스페셜 제작진은 남한 땅에서 자취를 감춘 조선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 사진 속 대호와 의문의 사냥꾼들
그 결과 포항공대 김대진 교수팀을 통해 1903년경 영국인 바클레이가 전남 진도에서 사냥한 호랑이 사진보다 7년 이른 1896년경에 촬영된 사진임을 밝혀냈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찍은 최초의 사진이라는, 의미 있는 역사적 자료를 찾아낸 것이다.
조선 시대에 호랑이는 가장 무서운 맹수였다.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들을 습격하자 조선은 뛰어난 사냥꾼들을 모아 착호군(捉虎軍)을 편성했다. 유교를 바탕으로 인본주의 정책을 펼치던 조선에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호랑이는 없애야 할 대상이었다.
사실 호랑이와 사람간의 충돌은 조선 시대에 전국적으로 이뤄진 농지개간과 연관이 있다. 산지를 개간하면서 터전을 잃은 호랑이는 조선 왕조 내내 이어진 범 포획 작업으로 개체수가 급감했고, 맹수를 퇴치해 강한 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던 일본의 해수구제 정책으로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또한 일본의 부호들이 호랑이 가죽을 조선 최고의 전리품으로 여겨 마구잡이로 사냥하면서 사실상 호랑이는 한반도 이남에서 자취를 감췄다.
호랑이 사냥과 관련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한반도를 찾았던 서양인들이다. 이방인들에게 조선 호랑이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로 모인 서구 자본가들과 수렵꾼들이 호랑이를 주로 사냥했던 장소는 백두산이나 지리산이 아닌, 전남 해안 일대였다.
영국인 사냥꾼 바클레이는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일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농지 확대 정책으로 서식지를 잃은 호랑이가 사람이 적고 먹잇감이 많은 섬까지 헤엄쳐 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바클레이가 진도에서 목격한 호랑이 수는 4마리지만, 환경생태역사연구가 김동진 박사는 10마리 안팎의 호랑이가 이곳에서 살았을 것으로 파악했다. 향토 기록과 후손들의 목격 증언을 토대로 범굴이라 불렸던 진도 호랑이굴에서 당시 섬으로 내려와 서식했던 호랑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 "한국 호랑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 땅에서 멸종된 또 하나의 맹수인 한반도 표범 박제를 국내 최초로 발견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한반도 생태계의 두 강자인 호랑이와 표범을 모두 범이라 불렀다. 한반도에서 호랑이보다 반세기 가량을 더 버텼던 표범의 동일 아종은 현재 러시아에 일부 남아 있다.
서울대 이항 교수팀의 연구 결과, 연해주와 중국 만주에 사는 아무르 호랑이와 조선 호랑이가 유전적으로 같았다. 조선 호랑이는 한반도 이남에서 지역적으로 절멸한 것이지, 멸종한 것이 아니었다. 이항 교수는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지만, 한국 호랑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전한다.
호랑이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유해조수 문제는 이들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한반도 생태계의 건강과 한국 호랑이의 이름을 되찾으려면, 동일종인 아무르 호랑이 550여 마리가 살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방을 보전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반도에서 범을 복원해야 한다"며 "한반도 야생에는 호랑이와 표범의 먹이가 될 만한 동물들이 충분히 서식하고 있기에 범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 호랑이 전문가인 지나 마쮸히나도 "초식 동물들과 맹수들은 늘 공존해야 한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일으키며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범이 한반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종이 부활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살아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언젠가는 백두대간을 타고 조선 범이 남하할 수 있도록 서서히 북한 접경지역에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