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 전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제재·압박의 직진 전략만 고수하다 나 홀로 길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4일(현지시간) 북한의 핵활동 동결 등을 전제조건으로 6자회담 재개를 시사했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지 하루 만이다.
러셀 차관보의 발언은 '동결'이 아닌 '비핵화'를 강조했던 기존 입장과 결이 다른데다 그 시점으로 미뤄 모종의 기류 변화에 대한 관측을 낳게 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지금은 대화를 논할 때가 아니라 제재에 집중할 때이며, 한미 간에 입장 차도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최근 일련의 태도는 중국이 제기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와 맞물려 궤도 수정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런 분석은 미국이 지난 연말 북한과 비밀리에 평화협정 논의를 타진한 사실이 월스트리저널(WSJ) 보도를 통해 알려질 때부터 제기됐다.
보도 시점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월 중순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이다. 중국 측의 평화협정 의제 선점에 대한 사전 김 빼기 차원이란 지적이다.
이는 미국도 6자회담 9.19 공동성명(2005년)에서 이미 합의된 바 있는 평화협정의 가치와 효용을 완전 부인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제안은 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라는 미국의 창을 막기 위한 방패로서 고안됐다.
다만 안보리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사드 배치의 명분을 없애려는 고육책임과 동시에, 제재 국면 이후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공세적 포석이기도 하다.
미·중은 이처럼 다양한 카드를 손에 쥔 채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하는 반면 우리 외교는 위안부 문제 등에서 봤듯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 등을 통해 보여준 결기가 '역대 최강'의 안보리 제재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바뀌지 않는 한 제재만으로 북한을 굴복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이 점차 확인되고 있다.
중국이 5일 북한 광물 금수품목을 발표하는 등 안보리 결의 이행에 성실히 나서고는 있지만 평화·안정과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대원칙엔 변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의 특성상 제재 효과가 나타나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한데 직접 당사자인 우리와 달리 중국과 미국이 지속적인 인내심과 집중력을 보여줄지도 의문이다.
만약 대북제재가 올해를 넘길 경우 미국의 차기 정권은 누가 집권하든 오바마 행정부보다 강성 전략을 펴면서 더 큰 위기를 부를 공산이 크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현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 제안을 지지하고 나올 경우 우리 정부는 자칫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면서 "제재 일변도로 가기 보다는 출구도 열어놓고, 향후 대화 재개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주도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