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이 만족할 때까지" 21세기 新하녀 일기

[노동의 그늘 속 가사도우미 ①]

'新 하녀'. 소변이 급해도 일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꽝꽝 언 밥을 먹고, 비싼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의심을 받기 일쑤다. 다른 가정의 가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가사도우미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속에 일하면서도 '근로'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CBS는 63년째 법 앞에 실종된 가사도우미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들이 노동자로 바로 서기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모님이 만족할 때까지" 21세기 新하녀 일기
② 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③ "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④ "고용주가, 아줌마 아닌 가정관리사로 불러준다면"
⑤ 가사도우미도 新하녀도 아닌, 노동자로 서는 길
가사도우미 자료 사진. (사진=전국가정관리사협회 제공)
# 김지숙(가명·54·여)
한의사이던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걸려 10년 넘게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을 떼어놓고 부잣집으로 일을 다녔어요. 50평 넘는 넓은 집을 물 한잔 못 마시고 뛰어다녀야 '사모님'이 원하는 만큼의 일을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손빨래와 청소, 다림질, 반찬까지 만들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기 일쑤였죠. 관절도 뻣뻣해져서 손이 잘 펴지지 않기도 해요.

도우미 일이요? 올해까지 딱 14년째네요. 몸을 많이 쓰는 일이다보니 무릎도 성한 곳이 없어요. 몇년 전에는 퇴행성 관절염이 와 연골 주사를 10대나 맞았습니다.

일하다 다쳐도 제 돈 내고 병원에 다녀야 해요.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은 법에서 근로자로 치지 않는다네요? 그래서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 적용이 안돼 제 개인 보험으로 해결해요.

그렇지만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크게 남을 때가 있어요. 화장품이 없어졌다고 다짜고짜 도둑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산 스타킹을 손으로 빨아야 하는데 세탁기로 빨아서 14만원을 물어주기도 했어요.

그분들도 저희 도움이 있으니까 밖에서 일 잘하는 거잖아요. 우리를 무시 안 하면 좋은데, 인격을 존중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때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김지숙 씨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김 씨와 같은 가사도우미는 전국에 25만명 내외.

맞벌이 부부 증가와 가족들의 생활 방식 변화로 가사서비스 지출 규모는 급증세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맞벌이 가정의 월평균 가사서비스 지출 비용은 2003년 6078원에서 2013년 2만 5266원으로 316%나 늘었다.

가정주부가 무상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가사노동이 서비스 상품으로 굳어지는 경향이다.

앱스토에 등록된 가사도우미 소개 애플리케이션만 20여가지. 최근엔 인기 배우를 모델로 한 가사서비스 광고까지 TV에 등장하는가 하면 대기업까지 가사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가사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시장 규모를 1년에 3조원 정도로 보고 있다"며 "애플리케이션 가사서비스 시장은 말 그대로 엄청나게 급성장중"이라고 전했다.

근로기준법 11조 1항. (사진=근로기준법 캡처)
◇ 가사도우미는 '식모'? 한국전쟁 당시에 머무르는 법

그러나 급성장하는 가사서비스와 달리, 현장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들의 '법적 위치'는 6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근로기준법 11조 1항 '가사사용인은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은 지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이 급증하는 가사서비스 수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공익인권법 재단 윤지영 변호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강화되고 가사 노동이 '직업화'되는 등 사회가 변하고 있다"면서 "기존의 식모 역할을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집이라는 일터에서 가사도우미들은 어느 곳보다 강한 지휘 감독체계 속에 일하는 상황"이라며 "정당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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