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 길막고 '돈받는 사찰'…입장료 폐지 헛일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그 후 ①] 폐지된 입장료 집어삼킨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지난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지 바야흐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립공원은 입장을 할 때 여전히 적지 않은 돈을 내야한다. 또 반대로 입장료가 무료인 국립공원은 지나치게 많은 탐방객들이 몰려 몸살을 앓고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정책은 제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또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CBS노컷뉴스는 3차례에 걸쳐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후 나타난 부작용과 그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등산객 길막고 '돈받는 사찰'…입장료 폐지 헛일
(계속)
◇ 등산만 하는데 왜 돈 받나요…불편한 탐방객들

속리산 국립공원 입구에 법주사가 개설한 매표소. 문화재구역 입장료가 일인당 4천원이다. (사진=장규석 기자)
소백산맥에서도 1000미터 넘게 우뚝 솟은 속리산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명산이다. 천년 고찰인 법주사를 품고 있어 각종 문화재와 설화를 간직하고 있고, 망개나무와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이 살고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해마다 1백만 명이 넘는 탐방객과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속리산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들은 일단 매표소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징수하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 4000원을 내야 국립공원으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대부분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어른 1인당 4000원 씩이면 5명만해도 2만원이다. 거기다 속리산 입구에서 별도로 받고 있는 주차료 4000원까지 생각하면 사실 적잖은 비용이다.

심지어 사찰에 들르지 않더라도 입장료를 내야한다. 매표소 앞에서 한 여성등산객이 "등산만 해도 내야 되는건가요"라고 물었다.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입장료를 왜 내야하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속리산 일원 임야 1900만여 제곱미터가 사찰 소유 토지이면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 구역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는 알림판만 매표소 옆에 덩그러니 걸려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입장객들은 검표원에게 표를 건네면서 그저 "왜이리 비싸…"를 연발할 뿐이었다.

속리산 매표소 입구 전경. 매표소에서 표를 산 뒤 검표소를 거쳐야 국립공원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사진=장규석 기자)
매표소 앞에서 '관람료 4천원'에 놀라 발길을 되돌리는 탐방객들도 있었다. 발길을 돌리는 일행 가운데 한명은 "세금도 안내는 사찰이 왜 관람료까지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내 생각에는 안 받는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21개 중 16개 국립공원서 문화재 관람료 징수

이미 탐방로를 둘러보고 나온 사람들도 불만이 높았다. 한 여성 탐방객은 "4천원을 내고 들어가는데 배가 아팠다"며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절에서 왜 돈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끌고 경사가 없는 탐방로만 돌아보고 나온다는 젊은 아빠도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주차료를 따로 받고 여기서도 관람료를 받으니까 돈이 이중으로 들어가요. 가족들끼리 바람쐬러 오는 거니까 감수하고 오는건데…관리 차원에서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비용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국립공원 탐방객들은 엄격히 보전된 자연 속에서 치유와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오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과히 밝지만은 않았다.

지난 2006년까지 속리산은 국립공원 입장료 1600원과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 2200원씩 모두 3800원을 받았다. 이후 2007년부터 입장료 1600원은 폐지됐지만 2200원이던 문화재 관람료는 3~4년마다 껑충 올라, 지금은 4000원에 이른다. 이제는 과거 입장료까지 합친 금액보다 더 비싼 관람료를 내야 입장을 할 수 있다.

탐방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이유를 안내하는 알림판. 낡아서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사진= 장규석 기자)
이는 속리산 법주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21개 국립공원 가운데 16개 국립공원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리산과 설악산, 내장산, 오대산 등 16개 국립공원의 25개 사찰이 작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4000원까지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다.

입장료 폐지 때 문화재 관람료까지 함께 없앤 사찰은 설악산 백담사와 덕유산 백련사 단 2곳 뿐이다. 나머지 사찰들은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자 외려 문화재 관람료를 올려받기 시작했고, 대부분 3~4년에 한번씩 관람료를 꾸준히 인상하고 있다.

◇ 계속 오르는 문화재관람료…입장료 폐지효과 무색

심지어 지리산 천은사처럼 아예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를 막고, 지나가는 차량에게 예외없이 1600원씩 일종의 '통행세'를 걷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3년 문화재 관람 의사가 없는 지리산 탐방객에게 천은사가 강제로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지만 요지부동이다.

물론 박물관처럼 사찰의 문화재 또한 관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관람료를 걷으면서 사찰 또는 문화재 구역 안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또 관람료는 어떤 근거로 책정되며, 낸 돈은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것은 문제다.

한백생태연구소 윤주옥 소장은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설명을 한다던가 관람료가 어떻게 사용된다든가 하는 것이 공개가 돼야 한다"며 "관람료를 징수하는 장소나 방법 등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폐지된 입장료가 사실상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로 흡수되면서, 입장료 폐지의 편익은 국민이 아닌 사찰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모든 국민이 국립공원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한 취지도 퇴색된지 오래다. 문화재 관람료를 포함한 국립공원 입장료 정책을 바닥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그래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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