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강경보수에 감춰진 성장의 비밀 해부

신간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정치명문 혈통의 숙명과 성장의 비밀>

교도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 노가미 다다오키가 세 번째 아베 연구서인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 사회의 금기에 다가서고 있는 현 총리대신 아베 신조를 심층 분석한다.

'강경 보수'의 가면을 쓴 채 정치 실적을 쌓으려는 그의 우경화 노선에 예리하고도 매서운 펜대를 들이댄 것이다. 아베 신조의 부친 신타로 시절부터 아베 가문을 밀착 취재해 온 저자가 아베 신조 본인과 가족, 친구, 양육 교사 등과의 방대한 인터뷰를 밀도 있게 담았다.

특히 저자는 아베가 학력 콤플렉스로 도쿄대 엘리트를 기피하고, 국민들에게 독재자로 불리면서도 우경화 노선을 고집하는 이유를 그의 성장 과정에서 찾는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는 전쟁 중에 권력의 중심에 섰던 A급 전범이자 경제 관료의 자리를 이용해 총리에까지 오른 기시 노부스케이며, 친조부는 전쟁을 반대해 공천에서 탈락했음에도 선거에서 당선되었던 반골 정치인 아베 간이다. 극명히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아베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친조부 대신 따뜻하게 자신을 품어준 외조부의 뜻을 따라 '기시 되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는 애정표현이 서툴고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책은 유모 품에 자란 아베 신조의 유년기부터 마작에 심취했던 대학 시절, 가문의 지반과 간판, 가방(자금)을 물려받아 손쉽게 정계에 입문한 신인 정치인 시절,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 총리까지 올랐으나 건강 문제로 사임한 후 총리에 재취임 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한다. 자민당 60년의 계보와 그 안의 세력 관계도 살펴볼 수 있어 일본 정치사의 일면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임기 내에 반드시 개헌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힌 아베는 이미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미일 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등,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들고 있다. 그가 스트레스에 치명적인 궤양성대장염을 이유로 1차 내각을 내팽개친 전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건강 악화가 그를 조만간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아베의 밀어붙이기식 뒷문 정책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파급은 막대하므로, 정확한 진단과 대응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책을 눈여겨봐야 한다.


본문 중에서

기시 저택에서 꽃 장식을 담당하던 소게쓰류[草月流] 화도의 거장인 I부인이 신조를 무척 귀여워했는데, 신조도 그녀를 많이 따랐다. 그녀는 아베가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집에 없을 때 신조는 "나, 오늘 꽃꽂이 선생님 집에서 자고 올 거야"라며 잠옷을 둘둘 말아 보자기에 싸들고 I부인 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 I부인 집에서는 부인과 딸 사이에 아베가 끼어서 '내 천(川)' 자로 잠을 잤다.

"아야! 아파!" 어느 날 밤, 딸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신조는 양팔로 I부인과 딸의 팔을 꼭 감고 잠드는 버릇이 있었다. 애정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아마 엄마를 떠올렸을 거예요. 그래서 무의식중에 엄마에게 힘껏 매달리듯 딸아이의 팔을 꼬집은 거지요. 우리들에게 매달린 것도 응석을 부리고 싶다는 감정 때문이었을 겁니다." ―「1장 사랑에 굶주려 '곁에 붙어 잠들고' 싶어 하던 소년 시절」 중에서

아베가와 기시가는 도쿄대학 법학부 진학을 숙명으로 짊어진 가계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세이케이는 무시험으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신 짱은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신타로 씨가 '대학은 도쿄대학밖에 없다고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낡고 두꺼운 사전으로 신 짱의 머리를 탁 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겠다는 포부와 명문가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품은 한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공부에 대한 수치심과 르상티망(ressentiment,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답답한 심정)을 느끼고 있던 예민한 고교생에게,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반골 정치가로 칭송받는 부친 신타로의 '사랑의 매'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고참 비서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벌어져 갔다."
―「2장 유희와 좌절의 학창 시절은 왜 이력에서 삭제되었나?」 중에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달성한 안보개정은 세상으로부터 혹독한 악평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 점을 고통스러워했던 아베는 '대중의 반역'을 통해 대중(여론)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배웠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대중, 즉 국민은 언제나 친근한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와 대치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을 움직이는 미디어 퍼포먼스나 여론 조사 수치에 대해 남들보다 갑절이나 더 신경을 쓰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포퓰리즘은 가끔 정치에 있어서 국민이 '훼방꾼'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4장 침로 없는 출항」 중에서

아베가 학창 시절부터 토론에 약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에는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서술했다. 더구나 정계에 들어온 이래, 납치 문제 이외에 이렇다 할 정치적 실적이 없고 오히려 부회장 시절이나 간사장 시절에도 당내에서 낙제점 평가만 받았던 아베는 어떻게든지 단기간에 실적을 쌓기 위해 권력에 의존해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달리 말하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 아베를 강경 일변도의 정국 운영으로 몰아갔으며, 언젠가 국민들로부터 뼈아픈 응수를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게 했다. ―「5장 너무 빨랐던 출세의 계단」 중에서

국가의 기본인 헌법의 해석을 한 내각, 한 명의 총리의 판단으로 전환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가령 헌법 개정 없이 헌법 해석을 재검토하는 것이라 해도 최소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발상이 아베에게는 없었다. 아베는 2014년 2월 12일에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헌법 해석을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헌법 해석의) 최고 책임자는 나다. 정부 답변은 내가 책임을 지고 그에 대해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심판을 받는 것은 내각법제국 장관이 아니다. 바로 나다."
―「6장 그리고 의문시되는 ‘요령’과 ‘정’」 중에서

노가미 다다오키 지음/ 김경철 옮김/ 296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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