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조사 대상을 특정하는 '꼼수'를 부린 것인데,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 "내 번호가 여론조사기관에?"…가입자 정보 무단거래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여론조사 기관들이 모여 설립한 한국조사협회는 지난달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이하 KTDC)로부터 통신 가입자 정보 1,300만여 건을 6,000만원에 사들였다.
각 통신사들이 공익목적(전화번호부 등재)으로 KTDC에 제공한 데이터베이스(DB)로, 유선전화 가입자 개인 및 법인의 이름과 전화번호·주소가 포함돼 있다.
사실상 전국의 가정과 법인 정보 대부분이 여론조사 기관들의 손에 쥐어진 셈이다.
문제는 KTDC가 개별 가입자들의 동의는 물론, 통신사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DB를 무단 판매했다는 점.
SK브로드밴드의 관계자는 "만약 (KTDC가) 돈을 받고 팔았다면 그건 몰래 팔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 쪽에 동의를 구한 적도 없고, 물었다면 우리가 허락했을 리 없다"고 말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가 목적 외의 용도로 활용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선전화 설치 목적으로 건네진 개인정보가 여론조사를 위해 위법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나아가 한국조사협회 회원사 30여곳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게 된 까닭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돈으로 개인정보를 사서 여론조사를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음성적인 개인정보 거래를 또다시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 개인정보 거래가 통계·학술목적?…'눈 가리고 아웅'
한국조사협회와 KTDC 모두 DB거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조사협회 관계자는 "RDD(random digit dialing) 방식의 여론조사는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며 "지역 정보가 추가돼있는 전화번호가 있으면 편리해서, KTDC로부터 구매한 전화번호를 보조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RDD는 지역번호와 국번을 제외한 마지막 4자리를 컴퓨터로 무작위로 생성해 전화를 하는 방식인데, 해당 지역 거주자를 분명히 가려내기 위해 KTDC의 DB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KTDC는 "한국조사협회 측에 데이터를 판 것이 맞다"면서도 "통계·학술 목적으로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전제로 통계와 학술 목적이라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개인정보보호법 18조 4항을 들어,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거 여론조사가 순수한 통계와 학술에 해당하지 않고, 돈을 주고 자료를 거래했다는 점에서 불법성 시비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여론조사가 학술 목적이 아닌데다가 통계 목적이라면 제공받는 정보 자체가 유의미한 통계여야 한다"면서 "이 사례는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차후에 통계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18조 4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테크앤로 구태언 대표 변호사는 "동의 없이 전화번호를 파는 행위는 위법일 뿐 아니라 구매자 측 역시 동의가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샀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