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송교창? 진짜는 김지후였다

전술적인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카드

'나도 있소이다' KCC 김지후가 27일 오리온과 챔피언결정 5차전에서 슛을 시도하는 모습.(전주=KBL)
KCC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KCC는 27일 전주 홈에서 열린 5차전에서 접전 끝에 94-88 승리를 거뒀다. 2승3패로 시리즈를 6차전까지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

이날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신인 송교창(20 · 200cm)이었다. 송교창은 86-84, 2점 차로 불안하게 쫓긴 4쿼터 종료 43초 전 천금의 득점으로 리드를 벌렸다. 김효범의 슛이 불발된 것을 그대로 달려가 오른손 탭슛으로 밀어넣었다.

더욱이 송교창은 KCC가 92-88로 앞선 종료 3.6초 전 통렬한 투핸드 덩크를 꽂으며 전주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비록 슛 동작 이전 파울로 끊겨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4차전을 이겨낸 오리온 최진수의 도발적 덩크에 제대로 맞불을 놨다.

송교창은 이날 7점 중 5점을 경기 종료 2분30초 이내 승부처에서 올렸다. 접전 상황에서 나온 송교창의 깜짝 활약으로 KCC가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송교창은 KCC '신의 한 수'라 할 만했다.

하지만 이날 진정한 의미의 '신의 한 수'는 김지후(24 · 187cm)였다. 득점은 많지 않았지만 식스맨이던 김지후의 선발 출전은 나비 효과처럼 코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술적 의미에서 KCC가 내민 비장의 카드가 김지후였다.

▲에밋 겹수비, 고심 끝에 나온 '김지후 카드'

5차전에서 KCC 벤치는 일종의 모험을 걸었다. 전태풍과 김효범에 이어 김지후까지 슈터 3명을 한꺼번에 선발 출전시키는 것. 상대 주득점원인 애런 헤인즈나 조 잭슨을 막기 위한 수비 전문 정희재, 신명호를 뺐다.

눈에 띄는 것은 김지후였다. 앞선 4차전까지 김지후의 출전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1, 3차전은 아예 코트를 밟지 못했고, 2차전 2분47초, 4차전 47초가 플레잉 타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승부가 갈린 이른바 '가비지 타임'이었다. 그런 김지후가 선발 멤버로 나선 것이었다.


추승균 감독은 일단 에이스 안드레 에밋의 요청이었다고 했다. 추 감독은 "에밋이 상대 집중 마크에 힘들어 하더라"면서 "슈터를 1명 더 넣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KCC 코칭스태프가 내린 결단이었다. 에밋에 대한 이중, 삼중 겹수비로 골밑이 뻑뻑한 까닭에 오리온의 수비수들을 외곽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김지후를 낸 것이다.

'더블, 아니 트리플팀?' KCC 에밋은 오리온과 챔프전에서 상대 겹수비에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사진은 3차전에서 에밋이 상대 삼중 수비(빨간 원)에 막힌 모습.(사진=중계화면 캡처)
사실 오리온은 정희재, 특히 신명호가 출전할 경우 외곽 수비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왔다. 대신 해당 수비수(거의 헤인즈)가 에밋에 대한 도움 수비를 위해 골밑에 대기했다. 에밋을 막는 김동욱은 도움 수비가 있는 쪽으로 길을 열어 몰았고 겹으로 에워쌌다. 에밋이 "5차전을 앞두고 이틀 동안 잠을 못 잤다"고 말할 만큼 고전한 이유였다.

에밋이 공을 빼줘도 열린 선수는 신명호나 정희재였다. 신명호는 정규리그 3점슛 성공률이 23.2%에 그쳤다. 비단 오리온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전술적으로 노마크 기회를 준다. 정희재는 35.1%로 그나마 나았지만 챔프전에서는 2점 5개, 3점 1개가 모두 빗나가 무득점에 머물러 있다.

당초 KCC는 정규리그에서는 신명호, 정희재 투입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추일승 오리온 감독이 에밋 봉쇄의 비책을 들고 나오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추승균 감독은 "오리온의 에밋 겹수비는 정규리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KCC가 고민 끝에 수비수 대신 슈터를 선발로 낸 이유다.

▲김지후에 헐거워진 수비, 에밋이 헤집었다

'김지후 선발 카드'는 적중했다. 1쿼터 KCC는 모처럼 활발한 공격을 펼치면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김지후의 1쿼터 득점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출전 자체만으로도 오리온의 수비를 미묘하게 흔들었다. 특히 1쿼터 6분께 오리온 오른쪽 사이드에서 던진 3점슛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지후는 상대 수비를 달고도 과감하게 슛을 던졌고, 림에 빨려들어갔다. 오리온 수비수들에게는 '김지후도 던질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준 한방이었다.

이후 오리온은 에밋에 대한 수비가 헐거워졌다. 신명호나 정희재였다면 골밑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수비수가 외곽의 김지후를 마크하느라 자리를 비웠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에밋은 골밑을 파고들었다.

수월하게 득점했고, 화려한 스핀 무브로 수비수를 제낀 뒤 뒤늦게 상대 도움 수비가 오면 골밑의 하승진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했다. 동료 도움이 없이 김동욱 혼자만으로 에밋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1쿼터 에밋은 9점 2도움을 올렸다.

'슛 하나 던졌을 뿐인데...' 오리온은 4차전까지 돋보였던 에밋에 대한 집중 수비가 5차전에서 다소 헐거워졌다. 사진은 5차전에서 최진수(빨간 원)가 김지후(왼쪽)를 의식하며 골밑 공간을 내준 모습. 이후 에밋은 김동욱을 손쉽게 뚫고 골밑 3점 플레이를 펼쳤다.(사진=중계화면 캡처)
1쿼터 초반 분위기를 가져온 것은 11점을 올린 전태풍이었지만 쿼터 중후반은 에밋이 살렸다. 김지후의 3점슛 효과였다. 전태풍은 물론 김지후까지 막아야 했던 오리온 수비였다.

덕분에 KCC는 1쿼터를 31-19, 무려 12점 차로 앞섰다. 이는 이번 시리즈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차전까지 KCC는 단 한번도 오리온에 1쿼터를 앞선 경기가 없었다. 1차전(16-7), 2차전(32-23), 3차전(19-15), 4차전(23-22)까지 모두 1쿼터를 뒤지면서 출발했다. 4쿼터 대역전승을 거둔 1차전을 빼고는 모두 졌다. 워낙 탄탄한 전력을 갖춘 오리온에 한번 뺏긴 흐름을 가져오기 힘들었다.

그런 KCC가 5차전에서는 1쿼터 리드를 가져온 것이다. 특히 1승 뒤 3연패로 몰렸던 KCC였기에 초반 흐름을 가져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만약 1쿼터를 지고 출발했다면 3연패의 부담감이 일시에 몰려 또 다시 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가운데 5차전까지 가장 큰 1쿼터 12점 차 리드를 KCC가 먼저 가져간 것이다.

▲"오리온 전반 수비 패인…에밋, 편하게 했다"

1쿼터를 잘 끊은 KCC는 2쿼터에도 상승세를 이었다. 이후 김지후의 득점은 없었지만 이미 1쿼터를 소화한 것만으로 효과는 충분했다. 오리온의 수비는 에밋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 이후였다.

2쿼터에도 에밋은 골밑 공략에 집중했다. 본인 득점은 물론 203cm의 허버트 힐까지 이용, 도움도 4개나 올리며 14점을 합작했다. 전반을 KCC가 55-37로 앞선 이유였다.

'자유로워진 에이스' KCC 안드레 에밋(가운데)이 27일 오리온과 챔프전 5차전에서 1쿼터 김동욱의 수비를 뚫고 골밑 3점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모습. 김지후의 3점슛 이후 나온 플레이다.(전주=KBL)
이후 오리온은 후반 전열을 재정비해 무섭게 추격해왔다. 3쿼터만 31-15로 앞선 오리온은 4쿼터 1분34초 조 잭슨의 자유투로 첫 역전에 성공한 뒤 KCC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그러나 에밋에 이은 송교창의 깜짝 활약으로 끝내 역전승을 거두진 못했다.

경기 후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전반 수비를 패인으로 짚었다. 추 감독은 "전반 너무 수비가 느슨해서 대량실점했다"면서 "후반 수비가 정리됐지만 (전반 열세가) 심리적인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추승균 감독은 "슈터들이 좋지 않아서 김지후에게 슛 훈련을 많이 시켰다"면서 "수비도 열심히 해줬고, 기회가 왔을 때 슛도 쐈다"고 칭찬했다. 이어 "슈터가 포진돼 있으니 그래도 에밋이 편하게 했다"면서 "더블팀도 덜 오는 것 같고 어느 정도 길은 찾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지후는 13분을 뛰며 3점을 기록했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미미했다. 이날 20점을 올린 전태풍, 11점을 넣은 김효범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김지후의 역할은 오리온에 막아야 할 슈터가 1명 더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미끼 역할을 해준 셈이고, 이날 에밋이 양 팀 최다 38점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해준 물꼬가 됐다. 수치적 활약보다는 전술적 존재감이 컸고, 벤치의 작전이 빛났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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