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관한 모든 것, 97권의 해서(海書)로 살피다

신간 <해서열전>

<해서 열전>은 ‘바다의 교양을 읽을 수 있는’ 국내외 대표 해양 픽션과 논픽션 작품을 문인, 번역자, 평론가, 역사학자, 언론인 등이 개인적 체험을 녹여 비평한 ‘본격 해양도서 서평에세이집’이다.

그를 위해 해서 속 바다를 다시 뒤져 대상 도서 97권을 추려냈는데, 바다생태계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 해양생물과 어민의 삶을 핍진히 다룬 책, 바다문명사를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는 책 등 바다에 관한 온갖 주제들을 포괄했다.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도 포함시킨 까닭은 ‘바다와 인문학’이라는 프리즘으로 새롭게 읽어 인간의 삶과 바다의 밀접함을 재인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은 외국의 해양논픽션 걸작도 핵심을 요약 소개해 해양지식 지평을 넓히고, 우리의 해서 목록에서 어떤 책들이 빠져 있는지 가늠해보고자 했다.

역사, 문학, 사회과학서, 표류기, 모험소설, 현대시 속에서 길어 올린 바다

바다는 예로부터 인간의 삶터이자 먹거리의 보고, 미지의 이상이자 모험의 공간이었다. 수로는 진귀한 교역의 창구였고, 대항해시대에 바다는 동서 문명을 이었다. 사람들이 더 먼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고, 해저 탐사 개시와 함께 바다와 인간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어왔다. 바다와 함께한 인간의 다채로운 역사와 사고를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은 총 여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다.


제1부 ‘바다 위에서 탄생한 문명’에서는 대서양, 지중해, 환동해, 극해 등 바다에서 발아한 문명을 향해 돛을 올렸다. 근대를 횡단하려는 자라면 왜 바다라는 무대에 올라서야만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 것이다. 가령 영제국은 바다를 지배함으로써 세계를 쥐락펴락했지만, 근대 이전까지의 바다는 결코 서양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만일 명나라 정화鄭和의 해양 대탐험이 계속되었다면 동양이 근대의 주도권을 장악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서구 민주주의를 해외로 확산한다는 미명 아래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비공식적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19세기 팍스 브리태니카와 비교하여 팍스 아메리카나의 제일 원동력인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그것도 오대양을 누비는 항공모함이 있기에 가능하다.

제2부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는, 바다를 수산자원을 낳는 경제 수단 정도로 격하시켜버린 현대의 해양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한다. 인간의 기술이 발달하고 남획과 오염에 분별이 없어지면서, 해양 생태계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있다. 개별 국가의 이익과 자본의 욕망만이 바다에 남은 이래 ‘포 피시(연어, 농어, 대구, 참치)가 없는 어업 기술의 진보’라는 공유지의 비극이 바다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20세기 환경운동의 발흥에도 불구하고 해양 생물을 ‘수산자원’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젠 장기지속적인 경제성을 위해서라도 ‘수산물에서 수산생물로’ 인식 지평을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사람의 한평생은 바다를 망치기에 충분하다”는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말을 되새기며 우리 일상의 식생활문화부터 잘 몰랐던 어업 실태까지 짚어본다.

제3부 ‘바다와의 사투’에서는 불확실한 자연(바다)과의 싸움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인류의 삶, 바다라는 해독 불가능한 미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해양 개척사를 통해 인간은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바다(생물)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묻는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맞섰던 고대의 영웅 오디세우스부터 시작해 목숨 걸고 북극 항로를 개척한 ‘미친 모험가들’, 19세기 포경산업의 열기에 힘입어 바다로 나갔던 『모비딕』의 고래잡이배 선원들, 호랑이와 한 배에서 살아남은 『파이 이야기』의 소년 파이까지. 인간에게는 끝내 압도적인 자연으로 존재하는 바다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시대, 다양한 형태로 전력투구한 인간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제4부 ‘바다에서 꾸린 삶’에서는 갯마을과 섬사람들의 삶을 통해 욕망과 생존 욕구가 공존하는 바다의 맨얼굴을 살펴본다. 예로 한승원의 소설은 상처받은 바닷사람을 둘러싼 비정한 욕망들 사이에서 솟구치는 삶의 순정에 눈 뜨게 함으로써 인간을 좀 더 성숙하게 이해하게 한다. 『멍텅구리배』에서는 멍텅구리배 안 음험한 권력관계의 민낯을 통해 기형적인 압축성장 근대화가 강요하는 인간의 악마성을 파헤침과 동시에 복원해야 할 인간됨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어루만진다. 한편 바다를 무대로 많은 작품을 쓴 섬 출신 작가 한창훈의 『홍합』에는 여수 바닷가에서 홍합을 까며 살아가는 억척어멈들의 삶과 말이 담겨 있다. 민중소설 혹은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 작품을 떠받치는 것은 바다에 대한 작가의 이해다. 그는 바다를 ‘처음부터 그러한 것自然’으로 이해하고 이 자연을 ‘최고의 질서’로 받아들이며, 바다와 부대끼는 삶을 “조용한 자포자기”로 기꺼이 수락하고자 한다.

제5부 ‘우리 역사, 바다를 통해 읽다’는 역사 속의 바다를 그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바다는 무엇을 의미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톺아본다. 한국문학사에서 바다는 여태껏 유력한 상상력의 원천이지 않았다. 조선이 중원 대륙국가를 문명의 중심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쓰며 육지 중심 시선을 접고, 바다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실학의 바다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그 밖에도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열강의 거침없는 식민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서 심청의 편력을 그린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 중심부-변경의 도식적 관계를 전복함으로써 ‘변경이 세계의 중심’ ‘섬은 창조의 영점’임을 환기하는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은 바다라는 압도적 자연 위에 떠오르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다각적으로 드러낸다.

제6부 ‘미지의 바다, 광기의 바다’에서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가 나온 지 150여 년이 지났지만 바다는 아직도 인류에게 남은 미지의 수수께끼라는 점을 ‘문명을 뒤덮는 바다의 어둠’이라는 철학적 주제의식으로 돋을새김한다. 『파리대왕』 『달과 6펜스』 등 세계명작 속에서 바다와 섬이라는 공간은 미지, 광기, 이상에 가 닿는다. 최근 국내 해양소설로서 독보적 성취를 이룬 『극해』는 바다 자체가 전쟁과 같은 인간의 한계 상황을 강력하게 추념하는 알레고리이고 단순히 지리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지정학의 표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바다의 환유 공간인 유키마루호는 바다가 치열한 생존 고투의 현장이자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국경선임을 드러낸다. 요즈음 해양시로서 현장성과 예술성을 공히 인정받은 『멍게』 『살구꽃이 돌아왔다』 등의 시집은 낙지, 꽃게, 홍어, 주꾸미, 명태, 갈치, 멸치, 고등어, 오징어 등등 식탁 위 바다 우화로 우리네 삶의 비의를 환기시켜준다.

국내 미번역 해서 목록 추가 수록

『해서열전』 각 장의 부록에서는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해외의 바다 책들을 모아 소개하고 있다. 바다 생물체의 유구한 역사를 본격 탐사한 책부터 내해, 즉 대륙 안의 바다를 탐험한 책, 왜곡된 해산물 소비 실태를 추적하는 문제적인 책이나 각지의 돌고래 잡이·수족관 문화 등을 심도 있게 비판한 책 등, 여러 분야의 흥미로운 책들을 찾을 수 있다. 범고래의 생태나 물고기의 고통에 천착하는 학자들의 연구에는 놀랄 만한 열정이 숨어 있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암초의 미로를 헤매며 산호초의 세계를 탐험한 이야기나, 한 알의 장어 알을 찾아 망망대해를 뒤졌다는 ‘우나기(장어) 박사’의 이야기, 해마, 해삼, 플랑크톤, 심지어는 성생활이 독특한 바다생물들에 각각 ‘꽂혀’서 그에 파고들었던 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들을 일람하자면 새삼 잊고 있던 저 바다의 깊이와 넓이를 생각하게 된다. 바다의 생태와 역사 외에도 파도 위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생선요리의 과학적 노하우, 해상 국경분쟁 등 다채로운 주제들이 흥미를 당긴다.

‘바다 책’이라 하면 바로 떠오를 만한 『노인과 바다』 『모비딕』같은 세계명작선, 『오디세이아』 『콜럼버스 항해록』 같은 고전, 『환동해 문명사』 『자산어보』 『난중일기』 같은 우리 역사 속 바다의 기록들을 읽는 사이사이, "이런 책까지 나와 있어?" 싶은 외서 목록을 살펴볼 수 있다.

남종영·손택수 외 39인/글항아리/504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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