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독일에서 심리치료사이자 심리학자로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봐온 저자 로란트 카흘러 자신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고 기존의 치유심리학이 극심한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별 효과가 없음을 직접 경험하고 새로운 치유법을 찾아낸다.
그는 이 책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체계적으로 정리한,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에 대해 알려준다.
가까운 가족이나 배우자 등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치유법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담담한 수필 같은 글들로 시작된다. 총 11장으로 나뉘어 아들의 장례식 장면에서부터 아들이 없는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 관을 사이에 두고 어린 자식을 대면하는 부모의 심정, 줄곧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천, 수만 가지 아들과의 추억, 문득 고인이 된 아들이 보내오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기적 같은 선물 등 아들의 죽음 이후 저자가 겪은 경험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때론 모든 고통이 지나간 듯 덤덤하게, 때론 방금 불에 덴 듯 펄펄 끓는 슬픔과 분노에 몸부림치며, 그리고 마침내 얻은 마음의 평화와 삶을 향한 희망의 길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각 장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이후 겪게 되는 일반적인 체험과 그에 따른 단계별‧상황별 저자의 조언, 그리고 명상을 통한 상상 연습 등의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서 고인을 대하는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 전통 등도 소개하고 한 아이를 떠나보낸 아버지로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심리학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일상에서 쉽게 따라 해 볼 수 있는 명상과 상상 등 연습 코너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특징이 도드라지는 치유 심리서이다.
그가 찾아낸 치료법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슬픔은 감추거나 몰아내야 하는 불필요한 감정이 아닌, 고인과 내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창조적인 관계의 과정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강제적으로 고인을 일상에서 밀어내고 땅에 묻듯 그와의 모든 추억과 사랑의 감정, 또는 미처 고인과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앙금까지 기억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관계를 정립하고 살면서 그와 함께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 책의 초반부는 상실의 슬픔을 새롭게 이해하는 심리적 배경과 이론적 근거를 독자가 접근하기 쉽게 설명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유가족으로서 슬픔을 딛고 고인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단계별 실질적인 조언과 명상, 상상 연습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적재적소에 배치한 릴케를 비롯한 아름다운 시와 인용문은 슬픔으로 지친 독자의 마음을 때론 더욱 고통스럽게 쥐여 짜고, 때론 세상 누구도 주지 못한 동지애와 같은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이는 모두 저자가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처절한 슬픔 끝에 서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비록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우리 곁에 여전히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위한 자리를 더는 주저하지 말고 만들어야 한다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지만 이는 단지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과정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른 순서가 돌아온 것일 뿐이라고. 이런 시간 차이는 결국 사소한 것이고 고인은 다만 다른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 속에서 우리는 고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온 힘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떠나보내는 대신 여전히 고인을 사랑하며 삶을 채워나갈 때 그는 별처럼 멀어지는 대신 당신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것이 바로 삶이 가지는 위대한 힘이며 기적이라고 이 책은 온 마음을 다해 말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당신에게 중요했던 이런 장소들을 당신의 기억과 무의식 속에 떠오르게 하세요. 그런 장소는 이런 곳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
우리의 사랑이 싹트게 된 장소.
우리의 관계가 한층 깊어진 장소.
특별히 아름다웠고,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최고로 기억
되는 장소.
함께 휴가를 갔던 장소.
특별한 이벤트를 했던 장소.
함께 어려움을 겪었던 장소나 힘을 합쳐 문제나 갈등을
극복했던 장소.
그리고 고인에게 중요하고 특별했던 장소.
찬찬히 기억해보세요. 매번 새로운 장소가 머리에 떠오를 것입니다. 기록한 종이들을 시기 순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벽에 커다란 지도처럼 붙여놓을 수
있습니다. 그 장소들이 마치 당신들이 함께 관계를 맺었던 역사를 나타내는 지도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장소들을 기록한 종이 앞에 서서, 마음속
으로 그 장소와 그 순간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08p '우리를 연결해주는 장소 찾기' 중
나는 그처럼 슬프고 두려움에 잠긴 상태에서 예배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틀 뒤에 그 아이의 장례를 치른다는 사실을 끝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아니, 그것은 사실일 리가 없고 사실이어서도 안 된다.
문득 내 눈길은 예배당 안의 높은 공간으로 옮겨간다. 저 위에서 공작나비가 아침 햇살 속에 날개를 팔락이며 날아간다. 그것은 내 아들, 바로 그 아이가 틀림없다! 미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다―즉 내 아들이, 그 애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 빼고는 말이다. 목사의 설교는 그저 멀리서 들릴 뿐이다.
장례를 치르고 또 며칠이 지났다…….
아들의 무덤가에 해바라기와 장미꽃들이 피어나 싱그럽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나비들이 날고 있다. 아름답고 고운 나비들, 공작나비들이다. 그것들은 그냥 거기에서 하늘거린다.
나비들 틈에 내 아들이 보일까? 말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마치 그 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 이 작은 곤충들이 어떻게 나를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실제로 나는 그렇게 위로받는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이듬해 여름, 나비들이 또다시 거기에 보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들이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내게 나비들은―싫든 좋든―저세상으로부터 온 그 아이의 사자(使者)들이다
-153p '나비, 마음의 날갯짓' 중
날씨가 좋을 때면 나는 차를 몰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나간다. 차 안의 라디오에선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함께 흥얼거리다가 몇 초 뒤에 흠칫 놀라고 만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이건 전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즐거운 기분이거나 주책없이 이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면 아들을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내가 더는 아들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그 애가 없는데도 이제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세상 사람 가운데 누가 과연 내 아들의 죽음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아들을 버려두었다는 느낌, 그 애 혼자 세상을 등지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그 애를 배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10p '익숙해진 슬픔' 중
당신은 내면의 대화에서 사랑하는 고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거나 편지로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여기 지상에서 내게 허락되고 주어진 대로 조금 더 살겠습니다.
그다음 당신에게로 갈게요. 이는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때 가서 우리는 힘껏 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나는 조금만 더 살겠습니다.
나는 더듬더듬 일상으로 돌아오고, 당신을 다시금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내 삶 속에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삶을 이어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생기를 찾을수록 내 안의 당신도 활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삶을 누리려고 노력합니다.
당신 역시 나와 함께 삶을 누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몸이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내 안에서 당신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는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루하루, 늘 하는 일 속에서, 바쁜 와중에도 더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깜박하고 당신을 잊는 순간이 오면 그땐 당신이 나를 찾아 꿈속으로 와주세요.
나 역시 당신을 되찾으려고 힘쓸 것입니다.
비록 내가 점점 더 일상에 익숙해지더라도 나의 기억 속에서, 내면의 영상 속에서, 당신과의 마음속 대화에서, 당신이 잠든 무덤가에서, 그리고 당신을 발견할 수 있는 어디에서나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시간을 견디게 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를 이어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이나 무슨 형태로든 다시 만날 것을 나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27p '이제는 세상에 없는 고인과 이 세상에서 잘 지내는 법'중
로란트 카흘러 지음/ 두행숙 옮김/ 이끼북스(청어람미디어) / 240p /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