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파리 코뮌의 성립에서부터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무너질 때까지의 하루하루를 숨차게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밤 파리의 알마 다리에서 의문의 여인 변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젊은 코뮌 전사 지케와 릴리가 페르 라셰즈 담을 넘어 사라지며 막을 내리기까지 두 달여 기간을 다룬다.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의 코뮌 시기를 주무대로 그렸지만, 코뮌의 배경이 된 보불전쟁을 비롯해 코뮌 정부와 티에르의 베르사유 정부와의 갈등, '피의 일주일' 동안 폭풍처럼 몰아친 살육과 저항의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타르디는 이 책에서 파리에 대한 사랑, 서민들에 대한 애정과 함께 여성 혁명가 루이즈 미셸이나 당시 저널리스트였던 쥘 발레스와 같은 인물들에 대한 존경심 등을 한껏 펼친다(실존 인물들이 이 책 곳곳에서 등장한다). 또한 권력에 맞서는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을 숨기지 않고 코뮌의 잊혀진 전사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스산한 거리와 음침한 골목을 무대로 넝마주이, 혁명가, 공증인, 밀정, 불량배, 탈영병, 창녀들이 뒤엉킨 대서사가 펼쳐지면서 코뮌의 파리, 그 시대의 기쁨과 수탈, 무절제와 사랑, 억압된 에너지를 강렬하게 되살려낸다. 더불어 정의에 대한 환상적인 희망의 출현, 인간 사이의 우애, 자유의 절대적 가치를 호소력 있게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은 문학을 통해 파리 코뮌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일 뿐만 아니라, 타르디 특유의 아나키스트적이고 민중적인 해석을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타르디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프랑스 그래픽노블의 가장 걸출한 작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타르디는 2013년 1월 '레종도뇌르' 훈장을 거절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가 '리베라시옹'을 통해 밝힌 거절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상과 창조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나는 현 정권이든 어떤 종류의 정권으로부터든 아무것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큰 각오를 하고 이 훈장을 거절한다." 타르디는 아나키스트인 자신이 어떻게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포로였던 부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래픽노블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포로수용소(Moi René Tardi, prisonnier de guerre)'(2012, 한국어판 2014)를 출간했다.
1871년의 파리 코뮌을 다룬 이 책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홍세화 선생은 '옮긴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규부대에 의해 궤멸될 숙명이 예정된, 민중 전사들로 이뤄진 비정규부대. 이것이 광주항쟁과 파리 코뮌을 연결하는 열쇳말의 하나일 것이다. 벼랑 끝 전망 속에서도 낮에는 토론하고 밤에는 춤을 추었던, 두 달 남짓의 대동(大同) 세상. 하지만 그것은 ‘피의 일주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일주일이 광주항쟁의 일주일과 그대로 포개지는 것은 역사의 우연일까. (…중략…) 우리는 어쩌면, 이미 새로운 세상을 향한 더듬이 자체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파리 코뮌의 좌절된 꿈과 이상은 더 소중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마지막 바리케이드’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믿는 독자라면 그 꿈과 이상에 동의해주지 않을까. 그런 독자들이 적지 않기를 바란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으로 다시 회귀하는 듯한 이 시대에, 이 책에 등장하는 장바티스트 클레망의 시 '피의 일주일'의 한 대목은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
내일이면 다시 경찰 나부랭이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칠 것이다.
자기들의 복무를 뽐내듯
목줄에 권총을 차고서.
빵도 일자리도 무기도 없이
우리는 지배당할 것이다.
밀정과 경찰과
폭력적인 권력과 성직자들에 의해.
그래… 그것은 흔들리고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설욕전을 조심하라,
가난한 자들이 모두 함께할 때!
자크 타르디 지음, 장 보트랭 원작/ 홍세화 옮김/ 서해문집/ 320쪽/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