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이어진 부산영화제는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성장을 거듭해왔다.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임에도 불구,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4년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 이전까지는 그랬다.
이후 본격적으로 부산영화제와 부산시 및 정부 측과의 갈등이 시작됐고, 영화인들은 올해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훼손되면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다이빙벨' 상영 2년, 대체 부산영화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다이빙벨' 왜 상영하면 안돼요? '표현의 자유' 논란
2014년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부산영화제의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됐다.
부산시는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상영 중지를 요구했고, 영화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정당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영화를 상영 중지시키는 행위는 엄연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이었다.
'다이빙벨'은 개봉 당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다이빙벨' 투입 논란을 통해 정부 및 미디어의 진실 은폐를 다룬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문제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제에서는 문제작이라고 해서 상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출품작들에 대한 다양성과 자율성 보장은 어느 영화제든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는 순간, 잘 쌓아 온 정체성이 훼손될 수도 있었다.
부산영화제는 상영작 선정은 프로그래머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부산시의 요청을 받아 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영화계와 시민단체들의 협공에 부산시는 '다이빙벨' 상영 중지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관객들은 그 해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볼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심사에서는 최우수 평가…이상한 예산 삭감
지난해 5월, 부산영화제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국고지원 예산을 반 토막 수준으로 삭감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랐다.
영진위 측은 부산영화제가 자생력을 키워야 하고, 7회 이상 국비 지원을 받은 국제 행사는 정책상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진위의 심사 평가 의결서는 의혹을 더욱 커지게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해 영진위의 심사 대상인 9개 영화제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국고 지원을 받는 7개 영화제 중 참가국, 상영 영화, 관객수 등이 월등히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실적이 향상된 영화제였다.
당시 국회의원 측 조사에 따르면 부산영화제는 총예산 대비 국고 지원금 비율이 11.8%로 국고 지원 국제영화제 중 최저를 기록했다.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영진위의 주장과 달리, 이미 충분히 자생력을 갖춘 상태였다.
'7회 이상 지원이 어렵다'는 이유도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에서 행사 특성을 고려해 10억 원 이상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재정당국과 별도 협의를 추진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인 탓이다.
영화제 집행부가 "예산을 줄여서라도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꿋꿋하게 성년을 맞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는 감사원으로부터 대대적인 회계 감사를 받았다. 부산영화제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 2개월 만에 나오는 감사 결과가 5개월이나 늦게 나왔다.
감사원은 이를 통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이 허위 계약으로 제3자에게 협찬중개수수료를 부정 지급한 것을 적발했다.
곧바로 부산시의 공격이 이어졌다. 부산시는 세 사람을 검찰에 고발하며 의혹이 해소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감사원 처분 결과를 거스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화제 관계자는 이것을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표적 감사'와 '보복성 고발'로 봤다.
부산시는 9월 말에 감사 결과를 받았지만 부산영화제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전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전 위원장과 영화제 측은 '표적 감사' 결과에 따른 사퇴를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형평성 문제도 존재했다. 비슷한 지적을 받은 다른 문화 기관들은 주의나 환수 조치 정도의 행정 처분에 그쳤다. 그런데 유독 감사원에서 부산영화제를 수사기관에 고발하라고 요구하고, 부산시 또한 이를 강행했다는 설명이다.
부산영화제 측은 감사원이 문제 삼은 협찬중개수수료 부정 지급에 대해서는 "협찬 중개활동을 증빙하는 자료가 미흡한 부분과 일부 행정 착오에 따른 과실을 지적한 것"이라며 "협찬 유치 혹은 중개인에게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주는 것은 통상 관행적인 일이다. 협찬금 유치 및 관리 관련한 행정 전반은 부산시 감독을 받고 지침에 따라 처리해왔다"고 밝혔다.
거듭되는 외압 논란에 지난달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동시에 임기가 끝나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재위촉하지 않아 사실상 이 전 집행위원장은 해촉된 상태다.
◇ 신규 자문위원 68명이 자격 부적절? 영화인들 '보이콧' 발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하는데 큰 힘을 보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집행위원장이 된 배우 강수연과 공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강 위원장이 무리 없이 영화제를 운영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강 위원장이 막 첫 영화제를 치른 것을 생각해보면, 부산영화제를 지탱하던 한 축이 무너진 셈이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다. 위촉된 신규 자문위원 68명은 자율성·독립성 보장을 위한 정관 개정 및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연임 등을 의제로 한 임시총회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본격적으로 부산영화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서병수 부산 시장은 임시총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자격 없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지역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도 있었다. 부산영화제 측이 수도권 영화인들을 동원해 영화제를 흔든다는 이야기였다. 부산시는 여기에 더해 법원에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이번에는 영화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영화인연대의 성명서 발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 영화인 비대위)는 아예 '보이콧'을 선언했다.
범 영화인 비대위는 지난 21일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영화인들은 올 해 부산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라면서 "'결자해지'를 할 때가 마침내 임박했나. 부산시가 예산 지원을 이유로 영화제를 자신의 전유물로 여긴다면 부산 레드카펫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텅 비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