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현대건설이 잘했다.
센터 양효진은 5경기에서 96점을 퍼부었다. 세터 염혜선의 토스도 정상급이었고, 황연주, 한유미 등 베테랑들의 활약도 만점이었다. 리베로 김연견은 상대 스파이크를 연신 걷어올렸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모두 싱거웠던 탓이다. 100% 전력으로 맞붙어야 할 '배구 잔치' 포스트시즌이지만, 외국인 선수 교체 규정으로 인해 흥국생명과 기업은행 모두 100% 전력으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부터 V-리그 여자부는 트라이아웃을 거쳐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
일단 경력부터 제한했다. 미국 국적의 만 21~25세 대학 졸업예정자 및 해외리그 3년 이하 경력 보유자만 트라이아웃에 참가가 가능했다(단 경력 제한은 다음 시즌부터 해외리그 경력 무관, 26세 이하 선수로 바뀐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를 줄이고, 여자배구의 평준화를 추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문제는 대체 선수가 필요할 때 발생한다. 현 규정에 따르면 선수를 교체할 경우에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인원 내에서 교체가 가능하다. 이번 트라이아웃에는 총 21명이 참가했다.
6개 구단이 드래프트를 통해 지명한 6명을 빼면 남은 15명 안에서 대체 선수를 찾아야했다. 무엇보다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한 15명의 선수가 소속팀 없이 그대로 남아있을리가 없었다. 선택권이 좁아도 너무 좁았다.
결국 흥국생명은 5라운드에서 부상으로 쓰러진 테일러 대신 알렉시스를 영입했다. 알렉시스의 포지션은 센터. 남자부 OK저축은행 시몬과 달리 후위로 가면 리베로와 교체되는 순수 센터였다. 흥국생명은 5라운드까지 해왔던 배구를 싹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외국인 선수와 함께 포스트시즌에 가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알렉시스는 플레이오프 2경기 14점을 올렸고, 흥국생명은 탈락했다.
현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 교체는 한 번만 가능하다. 그것도 5라운드까지로 제한을 뒀다. 덕분에 6라운드에서 외국인 선수의 태업설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6라운드에서 외국인 선수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외국인 선수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러야 한다. 아무리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낮췄다고 해도 최소 35%는 차지한다. 외국인 선수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면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규리그 우승팀 기업은행이 그랬다.
기업은행은 맥마혼이 6라운드에 부상을 당했다. 수술까지 하는 꽤 큰 부상이었지만, 외국인 선수를 바꿀 방도가 없었다. 결국 기업은행은 외국인 선수 없이 챔피언결정전을 치렀다. 최근 세 시즌 동안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기업은행이 단 한 세트도 따지 못하고 주저앉은 이유다.
이정철 감독도 경기 후 "선수들에게 고맙다. 만족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누수가 컸다"면서 "다음 시즌에는 정말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맥마혼의 공백으로 졌다는 말 대신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지만, 결국 승패를 떠나 맥마혼의 공백이 너무나도 컸다는 의미였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역시 외국인 선수 교체 기한이 있다. 하지만 야구와 축구라는 종목 특성상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배구보다 크지 않다.
반면 배구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절대적인 프로농구는 부상이라는 사유가 있다면 포스트시즌에서도 외국인 선수를 바꿀 수 있다(물론 농구도 트라이아웃 참가자에 한해서만 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 농구의 경우에는 참가 선수가 200명이 넘는다. 여자 농구는 트라이아웃 없이 드래프트 참가자가 80명 정도로 여자 배구의 4배 수준이다).
현재 규정이 유지된다면, 그야말로 외국인 선수가 다치면 우승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은 최고의 경기력을 원한다. 챔피언 현대건설이 보여준 경기력은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만 다른 팀들의 전력은 그렇지 못했다. 분명 외국인 선수 규정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