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시집] 송찬호 '분홍 나막신'

모란이 피네
- 송찬호 -

외로운 홀몸 그 종지기가 죽고
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런데 얘야,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 오지 그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그것의 코만 베어 온 것 아니냐
머리만 떼어 온 것 아니냐,
이리 투정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긴긴 오뉴월 한낮
마지막 벙그는 종소리를
당신께 보여주려고,
꽃모서리까지 환하게
펼쳐놓은 모란보자기

이 시는 새로 나온 송찬호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분홍 나막신'에 실린 것이다. <모란이 피네>에서 소리를 보자기에 담을 수 있다는 상상이 기발하다. '외로운 홀몸 그 종지기가가 죽고"는 권정생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모란 찬가로는 영랑 김윤식 선생의 시에 익숙한 터이지만, 송 시인의 모란 시로 올해 5월은 모란꽃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환(幻)
- 송찬호 -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로
수상한 사람이 지나갔다

어깨에 닿을 듯 늘어진
벚꽃나무 가지와
어떠한 접선도 없이!

아무것도 의심할 것 없는
화창한 사월의
어느 날 오후

3월 하순의 초입에 서울 안양천 둑길의 벚꽃나무들도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는 가지들이 언뜻언뜻 비치면서 머지않아 꽃대궐이 될 것임을 상상케 한다. 수액이 오르는 소리에 벌써 몸이 나른해지며 가슴이 움찔한다. 벚꽃이 활짝 피면 그 광경은 어떠할까. 이 시에서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로/수상한 사람이 지나갔다"고 표현한 것처럼 "화창찬 사월의/어느날 오후"에 허깨비(幻)를 보지 않을까.

'튤립'. '도라지꽃 연정', '검은 백합', '냉이꽃', '장미'와 같은 꽃을 제목으로 하는 시들이 많다. 또 '눈사람', '폭설', '이슬', '영국 공기',' 부유하는 공기들', '참새', '개똥지빠귀', 베어낸 느티나무에 대한 짧은 생각','버드나무 불망기', '복숭아', '상어', '붉은 돼지들', '토끼를 만났다' '연못', '저수지',봄의 제전' 등 식물과 동물, 자연을 노래한 시들도 있다.

'금동반가사유상', '분홍 나막신', '여우털 목도리', '돌지 않는 풍차', '두부집에서', '구덩이' '우물이 있던 자리' 등 사물과 장소에 얽힌 단상을 담은 시들도 있다.

익숙한 제목의 시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송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133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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