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는 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나

KBS '역사저널 그날'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 비극적인 삶 들여다봐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덕혜옹주'의 촬영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지 2년 만에 고종의 늦둥이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도 왕실에 입적하지 못한다. 그런 딸을 위해 아버지 고종은 일본 황실 입적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20일(일) 밤 10시 3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1912년, 절망에 빠진 조선 왕실에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환갑에 가진 고명딸에 대한 고종의 사랑은 각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간 출입을 삼가는 풍습도 무시하며 자주 찾더니, 50일째 되던 날에는 아예 덕혜옹주의 거처를 함녕전으로 옮긴다. 심지어 걸어서 2, 3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유치원을 만들고, 덕혜옹주를 가마에 태워 보내기까지 한다.


식민지 시대, 일본의 감시 속에 살던 고종의 일상에 덕혜옹주는 한 줄기 빛이었던 셈이다. 덕혜옹주에게도 고종의 보살핌이 있던 이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1919년, 덕혜옹주가 여덟 살이 되던 해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당시 조선에는 일본이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6년 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씻지 못한 채 강제로 일본에 보내진 덕혜옹주의 삶은 힘겨웠다. 그는 독살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보온병을 들고 다녔다.

열네 살의 사춘기 소녀에게 아버지를 독살했을지도 모르는 나라에서의 생활은 버겁고 무서웠다. 게다가 조국을 떠난지 1년 만에 오빠 순종이 승하하고, 몇 년 뒤 어머니 양귀인까지 사망한다. 덕혜옹주는 일제의 강요로 어머니의 장례에 상복조차 입지 못한다.

1931년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대마도의 백작과 정략결혼한다. 조선인들은 왕실의 핏줄인 옹주가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사실, 그것도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대마도 섬의 백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한다. 한 일간지는 덕혜옹주의 결혼 사진에서 남편의 얼굴을 지우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딸 하나를 낳았다는 보도를 마지막으로 덕혜옹주는 언론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수상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과연 덕혜옹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저널 그날에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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