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템마 카플란은 민주주의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밴담이 주장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비교역사학자답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가 보다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민주주의를 추구했음을 밝힌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훨씬 오래 전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페루의 모체 문명에서 민주주의가 태동했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저자는 인류 최초의 법조문인 함무라비법전을 이야기한다. "누구든 자기 배수로를 열어서 농작물에 물을 대는 과정에서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아 다른 이의 경작지를 침수시킨다면, 이웃에 입힌 손실만큼 곡물로 배상해야 한다." 농업용수에 관한 엄격한 관리 규정 속에서 우리는 법치주의와 공리주의를 추구한 민주주의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한정된 자원인 토지와 물을 분배하고,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조직하고, 법률을 만들었다. 이처럼 최초의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에서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제도와 관행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번영하였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보통시민들이 법률과 정책을 만들고, 분쟁을 심판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였다. 기원전 6세기에 프닉스 언덕 위에서 열린 민회에는 무려 6천 명이 남성시민이 참여했는데, 귀족은 물론 석수, 목수,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참석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민회 참가자 전원에게 석수의 반나절 임금을 지급했는데, 가난한 이들도 민회에 나와서 의견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파격적 제도 덕분에 저소득 계층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참여정신은 훗날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보통 사람들과 정치 권력자들을 연결하는 새롭고 중요한 수단이라는 순기능과, 권력자들이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대중언론이 갖는 특성으로, 과거에는 신문이 이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때까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무려 500종이 넘는 신문이 발행됐다. 신문은 카페나 술집은 물론 이웃나라의 비밀스러운 정치 단체들에게까지 배포되어, 반체제인사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오늘날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정보에 대한 정치권력의 통제를 약화시키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언론이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나폴레옹은 "적대적인 신문 4개를 1천 개의 총검보다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신문을 활용했고, 1799년 공화국을 전복시키고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프랑스 국내와 정복한 모든 나라의 언론을 조심스럽게 통제했다.


이처럼 대중언론은 민주주의의 생명줄이지만, 소수가 독점할 경우 권력을 위한 막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1인 1표’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재산이나 인종․성별․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일한 투표권을 가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여성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여성운동가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은 1840년 노예제반대 세계대회에 참석했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착석을 거부당했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스탠턴은 법률이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지 살펴보았다. 여성들은 임금과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갖지 못했고,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없었으며, 남편에게 배신당해도 법적으로 소송할 권리가 없었다. 이에 대해 스탠턴이 내놓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주장에 대부분의 신문들은 아내가 되는 게 여성의 더 높은 소명이라고 논평하며, 여성의 권리라는 생각 자체를 경멸했다. 하지만 스탠턴은 "신이 남성과 여성에게 어떤 영역을 부여했다면, 신이 계획한 그 영역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스탠턴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은 강력한 저항과 편견에 맞서 끊임없이 참정권 운동을 벌였고, 1950년대 전후로 프랑스, 미국, 멕시코 등의 국가에서 투표권을 쟁취할 수 있었다.

1893년 24세의 인도인 변호사가 기차의 1등석을 예약했다가 3등석으로 쫓겨났다. 이에 항의한 남자는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이 남자는 바로 마하트마 간디였다. 이로부터 60년 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는 흑인 여성인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당했다.

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비교역사학자인 저자는 이제까지 서양사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글로벌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특정한 지역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민주화 운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현상임을 밝혀냈다.

저자는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으로 막을 내린 인도의 독립 운동, 1994년 선거로 막을 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선거권 확보 투쟁, 그리고 미국에서 1964년과 1965년의 민권법을 낳은 1955~1956년 몽고메리 버스승차 거부운동이 20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불복종 운동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혀냈다.

민주주의는 저자의 말처럼 최대 다수에게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체제이다. 하지만 몇 가지 크고 작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선출된 공직자들과 보통 사람들 사이에 생각을 공유하고 갈등을 해결할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민주주의 정부 역시 권위주의 정부처럼 힘에 의해 세력을 넓히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많은 이들이 현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식민 통치와 광복, 전쟁과 산업화,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차례로 겪으면서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단결했지만 때로는 지역·계급·이념·세대 등으로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일은, 아직 그 역사가 짧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의미가 있다.

템마 카플란 지음/ 우태영 옮김/다른세상/232쪽/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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