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운 이유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성완 (시사평론가)

지난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제5국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 김현정> 김성완의 행간,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입니다. 오늘 뒤집어볼 '뉴스의 행간은요?

◆ 김성완> 이세돌과 알파고 세기의 대국이 결국 1대 4, 이세돌의 패배,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났죠. 그런데 이세돌 바둑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운 이유", 그 행간을 오늘 짚어보려고 합니다.

◇ 김현정>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 대국이었어요.

◆ 김성완> 그렇죠. 얼마전만해도, 인공지능이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줄은 상상을 못 했는데요. 하지만 돌아보면 이번 대국은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긴다는 이세돌이라도 CPU 1000개 넘는 슈퍼컴퓨터와 싸워 이기는 건 한 명이 프로기사 1000명과 맞대결 비슷한 거니까요. 또 한편으론, 구글이 더 이상 검색포털 회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회사구나, 이러다 세상 지배하겠다, 이런 생각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구요. 나아가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 소외, 일자리 감소, 심지어 혹시 인공지능이 세상 지배할 수도 있을까, 이런 우려들이 상상을 넘어 구체화된 계기도 됐습니다.

◇ 김현정> 그럼에도, 이번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웠다.. 그 이유가 궁금한데, 어떤 건가요?


◆ 김성완> 첫 번째 행간은 “그는 패배조차 아름다웠다”입니다. 쿨하게 패배 인정하는 모습, 참 신선했거든요. 5전 4패를 했는데 기자회견에서 구구절절 변명하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이런 거 모르겠지만요. 사실 이세돌 9단도 이렇게 패배할지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대국 시작 전에는 "5대 0" 게임을 자신했었잖아요. 사실 게임 승률로만 보면 완패 당한 건데요. 하지만 어제 대국이 다 끝나고도 인공지능이 어쩌니, 인간의 능력이 어쩌니, 구구절절 변명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리겠다” 이렇게 입장을 밝힌 겁니다.

그런데 어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첫 충격의 패배 당한 뒤. 2국에서도 3국 연패를 당하면서도 단 한번도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알파고의 완승이다” 이렇게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었거든요. 과연 우리 사회에서 패배를 이렇게 쿨 하게 인정하는 모습, 얼마만에 봤는지 모르겠는데요. 정부와 정치권은 툭하면 “남 탓, 환경 탓”, “니 편 내 편”, 스포츠계도 돈 꽤나 걸린 경기들은 돈 받고 승부조작, 이런 게 만연한 상황에서, 이세돌은 우리에게 '지는 법'을 가르쳐준 셈입니다. 그래서 이세돌 바둑은 아름다웠습니다.

◇ 김현정>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운 이유, 또 뭐가 있을까요?

◆ 김성완> 두 번째 행간은 “그는 도전조차 아름다웠다”입니다. 이번 대국을 돌아보면 이세돌은 늘 어려운 승부를 택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대국에서 분명히 드러났는데요. 4국에서 회심의 1승을 거뒀으니 한 번만 더 이기고 싶다는 욕망 얼마나 강했겠어요. 그런데 이세돌은 오히려 어려운 승부를 택해서 충격을 줬습니다. 원래는 돌 가리기로 흑백을 정하도록 돼 있잖아요. 흑을 쥐면 더 많은 집을 확보해야 해서 인공지능을 이기기 쉽지 않은데, 그런데도 이세돌은 자청해서 흑돌을 쥐었습니다. “백으로 이겼기 때문에 마지막에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가 있어서 해보고 싶다” 이게 그 이유였는데요. 그랬던 마지막 5국에서 CPU 천개 넘게 가진 알파고도 초읽기에 들어갈 정도로 팽팽한 접전 펼쳤습니다. 그리고 280수 만에 불계패를 당한 건데요. 요즘 우리 사회에 이런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사회 미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죠.

◇ 김현정>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운 이유, 정말 많네요.

◆ 김성완> 이세돌 바둑이 아름다웠던 이유를 하나 더 발견했어요. 그건 “책임감이 눈물겨웠다”는 것입니다. 사실 얼마나 심리적 부담이 컸겠어요. 인간과 기계 대결에 인간 대표로 출전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시작하고선 충격의 3연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게 아니다”, 이런 말로 사람들에게 희망 줬습니다. 그리고 실제 4국에서 이겼죠. 이런 그의 투혼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고 박수를 보낸 것입니다.

바둑이나 무술에서 9단은 사실상 신의 경지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그 말이 맞습니다. 이세돌 9단은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과 딸에게 힘든 내색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밥한 술 못 뜨셨을 정도로 힘들어하셨다는 말 듣고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밝은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지구보다도 무거운 부담감을 홀로 지고 견뎌낸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모습, 역시 이센돌이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 김현정>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였어요. 고맙습니다.

◆ 김성완>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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