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은 이세돌 9단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우상귀 소목에 첫 수를 둔 이세돌 9단은 침착하게 포석을 깔고, 우하귀에 큰 집을 마련했다.
이후 좌하귀와 하변 그리고 우상귀에서 실리를 챙기고 두터운 세력을 쌓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침투와 삭감을 계속하며 맞수 대결을 펼쳤다.
가장 치열했던 승부처는 중앙이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함께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끝내기까지 침착하게 대국을 풀어 나갔다. 알파고에게 4국과 같은 실수는 없었다.
막상막하의 승부, 미세한 집 차이로 승부가 갈리게 되자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졌다. 또 한 번의 불계패였다. 이전과 같고도, 또 다른 결과였다.
3국 이전까지 이세돌 9단의 이 같은 선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세돌 9단은 3연속 불계패하며 알파고에게 승리를 내줬다. 그러나 지난 13일 4국에서 78수로 알파고의 중앙집을 강력하게 파고 들면서 불계승 사인인 'resign'(물러나다)을 받아냈다.
무려 6일 동안 이어진 '세기의 대결'이었다. 각기 다른 세대의 프로 바둑기사들에게 직접 이번 대국에 대한 관전평을 들어봤다.
◇ 아쉬웠던 5국 승부, '신의 한 수'는 없었다
서봉수 9단은 '야전사령관', '된장바둑' 등으로 불리며 조훈현 9단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프로 기사다.
그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팽팽했던 마지막 대국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4국에서 한계를 보았고, 그 한계를 돌파할 '묘수'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서봉수 9단은 "초반에 알파고 수읽기에 문제점이 있어서 이세돌 9단이 득을 봤다. 그런데도 바둑이 만만치가 않더라"면서 "중반이 어려웠는데 이세돌 9단이 수비적으로 형세를 낙관했다. 그 때 유리해보이지 않더니 나중에 결국 안되더라"고 소감을 전했다.
바둑TV에서 캐스터로 활약한 김효정 프로 기사는 5국에서의 이세돌 9단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신의 한 수'가 부족했던 것을 패인으로 꼽았다.
김효정 기사는 "이세돌 9단이 본인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잘 뒀고, 판도 잘 짰다. 알파고에 흔들리거나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알파고가 흔들릴 만한 수를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인간이라면 두지 않을 엉뚱한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계산하는 것은 알파고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너무 몰랐던 알파고, 이제는 해볼 만하다
처음에 모두들 이세돌의 5승을 점쳤던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판후이 2단과 함께 둔 알파고의 기보를 보면 이세돌 9단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국 이후,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김효정 기사는 "우리가 너무 무지했고 상대에 대한 예측을 못했다. 그게 패배의 결정적 이유였다. 상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아마 그랬다면 이 정도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4국은 전환점이자 단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김효정 기사는 이를 두고 '믿어지지 않는 결과'라고 했다. 서봉수 9단은 거기에서 알파고 공략의 희망을 봤다.
서봉수 9단은 "세계 최정상급인 이세돌 9단이 기계한테 졌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면서도 "지금 알파고는 인간 못지 않은 상상력을 갖췄지만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직 그 문제점 공략이 되지 않았는데 그걸 잘한다면 인간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정보불균형' 분명하지만…승패는 인정해야
무지도 결국은 죄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 사이의 정보불균형과 승부 결과는 별개라는 이야기다.
김효정 기사는 "정보불균형이 있었지만 중간에 문제를 삼는 것은 시기가 좀 아니었다. 그 전에 준비를 잘 했어야 했다. 1대 4 스코어는 인정이고, 지저분한 승부로 만들고 싶지 않다. 다만 더 준비된 상태에서 재도전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한중일 바둑 기사들과 다양한 대결이 성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모든 국민들이 열광하고 응원했지만 프로 기사라면 안다. 그가 인공지능 알파고와 마주 앉아 얼마나 길고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 '인류 대표'라는 무게가 이세돌 9단의 본의와 무관하게 더해져 더욱 그랬다.
김효정 기사는 "얼마나 힘든 싸움이었는지 우리 기사들이 제일 느꼈다. 그 처절함을 견뎌내는 아픔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어느 순간 인류 대표가 된 이세돌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그 승부를 해야겠다고 해서 견뎌냈다. 정말 대단했고, 장하고 고맙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