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은 12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모비스와 4강 플레이오프(PO)에서 76-59 완승을 거뒀다. 3연승으로 시리즈를 마치고 챔프전에 선착했다.
오리온이 챔프전에 오른 것은 2002-03시즌 이후 13시즌 만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훌쩍 넘겨 다시 우승의 비원을 이룰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당시 오리온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중심에는 천재 가드 김승현(38 · 은퇴)이 있었다. 김승현은 데뷔 시즌이던 2001-2002시즌 혜성처럼 나타나 오리온의 정규리그와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현란한 드리블과 환상적인 패스로 팬들을 사로잡은 김승현은 마르커스 힉스를 비롯해 김병철 오리온, 전희철 SK 코치 등과 화려한 공격 농구를 선보였다. 2002-03시즌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일군 오리온은 그러나 챔프전에서 이른바 '사라진 15초 오심'으로 TG(현 동부)에 우승을 내줬다.
이후 추일승 감독이 부임하며 3시즌 연속 PO에 오르는 등 차츰 명문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그러나 챔프전 진출은 쉽지 않았다. 풍부한 선수층을 자랑했던 오리온이었지만 4강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뚝심의 이승현, 오리온 공격 농구의 중심
오리온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선수가 이승현(24 · 197cm)이다. 지난 시즌 데뷔한 이승현은 오리온의 약점인 골밑을 메워주며 화끈한 공격 농구의 디딤돌을 놨다. 리바운드는 물론 상대 외국인 선수를 막는 헌신적인 수비에 정확한 외곽포까지 장착한 이승현은 오리온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이승현은 지난 시즌 54경기 전 경기에 나서 평균 33분34초를 뛰며 10.9점 5.1리바운드 2도움 1가로채기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팀을 PO로 이끈 이승현은 라이벌 김준일(삼성)을 제치고 생애 한번뿐인 신인왕에 올랐다. 14년 전 선배인 김승현과 같았다.
다만 이승현은 김승현처럼 데뷔 시즌 우승을 맛보진 못했다. 6강 PO에서 LG와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으나 2승3패로 아쉽게 4강 PO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이승현은 상대 에이스 데이본 제퍼슨을 훌륭하게 막아냈으나 팀 패배까지는 막지 못했다.
올 시즌 PO에서 이승현은 6경기 평균 35분 가까이 뛰며 11.8점 3.8리바운드에 도움과 가로채기 1.2개씩을 기록 중이다. 언뜻 보면 평범하지만 이승현이 상대 장신 외인을 전담 수비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동부 웬델 맥키네스와 모비스 커스버트 빅터 등이다.
추 감독은 4강 PO 3차전 뒤 "상대 용병을 막아주는 이승현이 참 고맙다"고 했다. 이승현이 전쟁과 같은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수비 부담을 던 애런 헤인즈는 29점을 넣을 수 있었다. 헤인즈도 올 시즌 "이승현이 골밑에서 버텨줘 부담이 적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승현과 김승현의 이름은 같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팀에 주는 공헌도는 큰 차이가 없다. 이승현은 김승현의 화려한 묘기는 없지만 우직한 성실함이 돋보인다.
이승현은 4강 PO 3차전 뒤 "이승현이 김승현 이후 13년 만에 오리온의 챔프전을 이끌었다"는 말에 "같은 승현이라 그런가요?"라고 웃었다. 과연 이승현이 14년 전 동명의 선배처럼 팀을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승현의 평행이론'을 완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