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남은 두 차례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한 번은 이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데는 알파고가 그런 것처럼, 이세돌 9단 역시 알파고를 학습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 덕이 커 보인다.
12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세 번째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176수 만에 흑 불계패하면서, 이번 대회 우승상금 100만 달러는 3연승을 달린 알파고에게로 돌아갔다.
이세돌 9단은 이른 승부를 보겠다는 듯이 초반부터 알파고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빠른 시간에 불리해진 측면도 있지만, 1·2국과 달리 승부사로서 이세돌의 면모를 보여 줬다는 데서 후회 없는 판을 가져갔다. 앞선 두 대국에서 연이어 불계패하면서 심리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을 텐데도 이를 극복하고 실수 없는 바둑을 보여 준 것이다.
프로바둑기사 홍민표 9단은 12일 "어려운 승부다. 알파고의 능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개인적으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일 제2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은 바둑계 동료들과 밤을 지새우며 알파고에 대한 해법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세돌 9단과 함께했던 홍 9단은 "이세돌 9단과 여러 의견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가 '이런 작전을 쓰겠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며 "그저 자신의 바둑을 두겠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 남은 대국에서 이세돌 9단 응원해야 할 이유 스스로 만들어내
홍민표 9단은 "당시 미팅에서 알파고는 한 수를 두는 데 1분 30초~2분 정도 걸리도록 최적화 돼 있는 시스템으로, 이에 따라 200수도 안 돼 대국을 끝내는 식이라는 점을 공유했다"며 "그 수순을 늘리기 위해서는 '패'를 놔야 한다. 패를 두면 바둑의 수순은 늘어나지만, 반상에 놓여지는 돌은 많지 않으니 그만큼 알파고의 수읽기에 무리가 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패란 양쪽의 돌이 단수(바둑돌의 활로 네 곳 중 하나만 남은 상태)의 상황에 처해 서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 상대방의 돌을 잡은 뒤에는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둬야만 다시 돌을 잡을 수 있는 규칙을 말한다. 패의 형태에서 한 수씩 교환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돌을 다시 잡을 경우 반칙패가 된다.
홍민표 9단은 "이렇게 알파고의 수순이 길어지도록 만들면 판세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파고 역시 초읽기에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다고 봤다"며 "초읽기에 들어간 알파고가 1분 안에 완벽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탐색을 다 못한 채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노렸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 2국과 달리 제3국에서 이세돌 9단이 불계패를 선언할 당시 알파고에게 남은 시간은 총 2시간 가운데 8분 31초에 불과했다. 이 9단은 알파고에게 38분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1분 안에 돌을 둬야 하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30분가량을 버티며 알파고를 초읽기로 몰아가기 위해 분투한 셈이다.
홍민표 9단은 "의식해서 무조건 패를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대국을 그르칠 가능성이 큰데, 패를 들어가도 괜찮은 타이밍에서는 마다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며 "치열한 바둑을 구사하는 이세돌 9단의 흐름에서 패가 안 나올 수 없으니, 일단은 알파고를 초읽기에 들어가도록 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세돌 9단도 '불리하다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전'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3국 종반부에 이세돌 9단은 패 싸움을 벌어지는 등, 알파고를 초읽기로 몰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승부에서는 졌지만, 이세돌 9단은 자신이 준비해간 전략을 실전에 활용하면서, 인공지능을 상대로도 승부사다운 면모를 과시한 것이다. 남은 두 번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