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반으로 가면서 바둑판에 돌이 많이 놓일수록 수읽기 면에서 알파고가 유리한 만큼, 그 이전에 이세돌 9단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창조적인 판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둑 애호가인 맹성렬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1, 2국을 본 뒤 일본 프로바둑기사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의 '우주류'를 잇따라 언급했다.
대다수 바둑기사들이 집 짓기에 유리한 바둑판의 귀와 변을 중심으로 포석을 이어갈 때, 다케미야는 객관적으로 불리하다는 여겨지는 중앙을 거점으로 세력을 쌓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이러한 기풍은 우주류로 불리며, 1980~90년대 일본 바둑계에서 맹위를 떨쳤다.
맹 교수는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읽기를 할 때 컴퓨터가 유리한 만큼, 이세돌 9단 입장에서는 대국 초반에 판을 짜면서 압도적으로 판세를 잡지 못하면 뒤로 갈수록 불리해진다"며 "중반 이후 판이 어느 정도 짜여져 수읽기에 밀리지 않으려면 이 9단은 초반에 돌을 얼마 두지 않았을 때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인 판짜기를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대국 초반 상대적으로 자유도가 높을 때는 사람이 기계보다 높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 점에서 다케미야의 우주류식 바둑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을 텐데, 전성기 다케미야가 알파고와 붙었어도 재밌는 흐름이 나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알파고 계산 능력으로도 아직 바둑 완전히 풀어낼 수 없어"
공인 아마 5단의 바둑 실력자인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2국이 끝난 뒤 페이스북을 통해 "현대 바둑은 이창호 9단의 등장 이후로 종반에 가까워지면 한 수의 가치를 거의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고 전했다.
"30년 전, 이창호 9단이 등장했을 때 그의 수법들 중 상당수는 선배 프로 기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기존의 바둑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수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수법들을 구사해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딱 반 집, 한 집 반 씩만 이겨가는 경우가 많아지자 바둑 이론에 새 지평이 열렸다"는 것이다.
감 교수는 "상대가 인공지능이라서 좀 더 충격적이긴 하지만, 지금 프로 기사와 바둑 팬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좌절감은 본질적으로는 이창호 9단이 등장했을 때 선배 기사들이 느꼈던 감정과 다르지 않다"며 "계산하기 어려우니까 선택의 문제, 기풍(스타일)의 문제로 치부했던 영역이 사실은 정밀한 계산이 가능함을 당시의 이창호 9단이나 지금의 알파고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1국에서 알파고의 실수로 생각됐던 수들도 결국 상당히 리드하고 있으므로, 이를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역전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고 판을 정리해가는 수법들로 봤다. 알파고에서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가치망'보다는, 경우의 수를 좁혀 주는 '정책망'이 상대적으로 허술해 보이니 이세돌 9단이 수읽기 싸움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 교수는 "알파고의 계산 능력으로도 아직 바둑을 완전히 풀어낼 수(solved game)는 없다. (이세돌 9단이) 인간의 창의력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