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은퇴하고 용접하라’는 노동부 장관

메탄올 산재 사고로 본 파견노동 시리즈를 마치고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이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마다 제 손을 잡고 파견법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며 목메어 '울컥'했던 지난달 23일.

이날 이 장관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단과 오찬을 가졌다. 오찬 도중 그는 "50대 중반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으로 지내는 게 현실"이라며 "은퇴하면 용접 기술이나 배워서 파견직으로 한 7, 8년 일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이 장관의 말처럼 용접 파견직 노동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한 적절한 일자리일까. 실제 기자가 만나본 50대 파견직의 노동환경은 장관이 쉽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여름에도 1000도가 넘는 불꽃을 몇 시간씩 코앞에 두고 일해야 하고, 일명 ‘아다리’로 불리는 용접 불꽃에 시력은 감퇴한다. 안전장구도 제대로 없는 곳이 태반이라 화상은 기본, 온갖 금속이 녹으며 나오는 가스에 각종 발암 물질이 축적되고, 화재나 질식 등의 위험도 상존한다.

그런데 은퇴를 한 55세 이상 중고령자들이 노안이 올 나이에 용접을 배워서, 그것도 정규직도 아닌 인력파견회사를 통해 ‘파견’되는 신참으로 일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현장 노동자들이 “손을 붙잡고”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5세 이상 파견직 확대라는 얘기에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던 한 30대 파견 노동자는 ‘현장을 모르는 웃기는 소리’라고 코웃음을 쳤다. 해병대를 갓 제대했다고 자랑하던 20대 중반의 창창한 청년도 3일 만에 못 견디고 도망가는 곳이 바로 파견 현장이라고 말이다.

몇 명의 얘기만 들어봐도 바로 알 수 있을 파견직의 열악한 노동환경. 파견직 확대에 앞서 이런 노동환경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생겨나던 시점이었다.

메탄올 중독 산재사고가 발생한 작업 현장.
그런데 이 장관이 노후 대책으로 용접 파견을 하라고 권한지 불과 이틀 뒤, 5번째 메탄올 중독 환자가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그녀 또한 인천 남동공단의 한 파견노동자였고, 더구나 앞날이 창창한 20대 여성이었다.

20대 청년 노동자들마저 중환자실로 실려가는 파견현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파견 확대는 있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취재는 시작됐다.

사실 이번 메탄올 산재는 영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뻔 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처음 발생한 산재피해자는 당시 메탄올 중독 진단은 받았지만, 메탄올 중독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 3주 후, 이대목동병원에 실려온 두번째 피해자를 진찰한 직업환경 전문의가 "메탄올 '산재'가 의심된다"고 하자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뒤에야 노동부는 부랴부랴 실태파악에 나섰다.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메탄올에 중독되고도 산재 전문가를 만나지 못한 바람에 자신이 왜 아픈지조차 모른 채 병마와 싸웠거나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메탄올 산재 관련 기사마다 달린 '나도 파견직으로 일해봤는데 저 정도면 차라리 양호하다'는 댓글은 열악한 파견 노동의 현장 뿐 아니라 누군가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마저 엄살로 비춰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가운데 이기권 장관은 지난 7일에는 경기 종료 3.2초를 남겨두고 역전골을 넣어 승리했던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예를 들며 '마지막까지 파견법 등 노동4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노동4법 통과를 장담한 이 장관 본인은 은퇴 후 파견직 노동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20대 청년들마저 목숨을 내걸고 일해야 하는 파견노동 현장에 50대 이상 장노년을 내몰면서 정부는 어떤 안전대책을 마련하고서 '무조건 파견법 통과'를 되뇌이는가. 기획취재를 마치면서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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