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외야수 홍성흔이 새로 태어났다. 준수한 외모, 재치입담으로 야구계 대표적 분위기메이커로 꼽히는 홍성흔. 특유의 시원한 미소 뒤편으로 20년 안방마님을 포기하는 쓰라림은 없을까. 그동안 그의 고뇌와 제 2의 야구인생을 여는 포부를 들어봤다.
▲''화려한 포수 시절''…부상으로 내리막길
포수 홍성흔은 화려했다. 1999년 프로 데뷔 첫 해 단숨에 주전을 꿰찼다. 2001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고 포수 골든글러브도 2차례(01, 04년) 수상했다. 98년 방콕과 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등 굵직한 국제대회 단골멤버였다. 홍성흔은 "이때가 자신의 전성시대였다"고 했다.
재활을 하는 동안 07시즌 팀 후배 채상병에게 주전포수를 내줬다. 김경문 두산 감독이 "타격이 좋은 홍성흔은 포수보다 1루수가 낫다"고 말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포수 출신 김감독의 언급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이 악물고 훈련했지만...이젠 내 자리 아닌 것 같아"
지난 겨울 홍성흔은 이를 악물었다. 내년이면 수십억 FA계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구의 ''3D업종''인 포수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진갑용(삼성)이 지난 2006년 3년 최대 26억원, 조인성(LG)이 지난해 4년 최대 34억원에 계약했다. 비슷한 레벨의 홍성흔 역시 대박을 기대할 만했다.
무엇보다 20년 포수의 자존심이 걸렸다. "감독님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렸죠. ''포수 홍성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부었어요." 포수로 뛰기 위해 시즌 전 트레이드까지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연봉계약 마감시한을 넘겨 결국 3억1,000만원에서 40% 깎인 연봉 1억8,600만원에 계약하고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외부상황보다 마음 속 울림이었다. 주로 지명타자로, 간혹 백업포수로 나왔던 홍성흔은 4월30일 KIA전에서 채상병에 이어 마스크를 썼다. 경기에선 이겼지만 홍성흔은 비로소 ''때''를 느꼈다.
"난생 처음으로 포수자리가 불편하고 낯설었어요. 어떻게 경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김태형 코치, 히어로즈 김동수 형 등 선배들은 ''그때는 포수 생명은 끝''이라고 하더군요. 경기 후 감독님께 전화드려 ''이제 포수는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죠."
▲"딸아, 아빠는 괜찮은 포수였단다"…"돈보다 즐겁게 야구하고 싶어"
미련을 훌훌 털어낸 이제 홍성흔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외야수비를 훈련 중이다. "외야수로선 아직 6~70%"라고 자평하지만 내년 활약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꼭 포수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돈보다 즐겁게 야구할 수 있는 게 중요하죠. 불편한 자리보다 팀에 필요한 선수면 만족합니다. 포수를 미련없이 버린 이유죠."
수비부담이 적은 지명타자여선지 올시즌 타율 3할4푼4리(6위) 30타점의 불방망이다. 팀도 초반 부진에서 벗어나 2일 현재 공동 2위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확실히 타격에만 집중할 수 있어 잘 맞는 것 같아요. 원래 타격은 좀 했잖아요." 홍성흔은 통산타율 2할8푼8리로 최고의 공격형 포수였던 이만수 SK 수석코치의 2할9푼6리에 육박한다.
그러나 과연 홍성흔은 포수를 포기한 것일까. 혹시 다른 팀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포수 복귀를 요청한다면? 홍성흔은 이 질문에 잠시 멈칫하더니 "아마 다시 마스크를 쓰진 않을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