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나서 기자가 된 게 아니었구나…'

[방임청소년 보고서] 취재후기

'내가 잘나 기자가 된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순간 제 머리를 따라다닌 생각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품었던 기자라는 꿈도 이뤘습니다. 다 제가 열심히 한 결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제가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자라는 동안 '죽을 만큼' 저를 때린 적도 없었고 밥을 주지 않은 적도 없었습니다. 살 집이 있었고, 아플 때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었고,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운이 좋아 그랬습니다.


평범한 성장과정 가운데 한 부분만 삐끗했어도 제가 지금의 모습이었을진 의문입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죽을 만큼' 맞았고 밥을 제때 먹지 못했습니다. 살 집이 없었고, 아플 때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이런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칼을 들었다"라든지, "지하철역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잤다"와 같은 말들을 담담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듣는 제가 더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제가 말한 평범한 가정과 학창시절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너무도 멀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상황을 그저 '운이 좋지 않았구나'라며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기사가 나가고 여러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대개는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지만 '개인의 선택', '쉽게 돈을 벌려고 하다 그렇게 된 것'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같은 아이들이었지만 '학대·방임청소년'이라고 불릴 때는 동정어린 시선을 받았고, '가출청소년'이라 불릴 때는 가차 없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저도 자라면서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잡아준 건 부모님과 좋은 친구들,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하는 잣대가 돼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잣대'가 다르거나, 없었습니다. 사회에선 폭력은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집안에서부터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 잘못을 하면 바로잡아 줄 사람도 없었고 그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됐습니다.

기자를 만난 아이는 "'내 주위에는 이런 것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떨 때는 꾸짖고 혼내주는 누군가가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선택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합니다. 다만 그 선택에 이른 과정에 대해서도 '자기가 선택한 거니까…'라며 팔짱껴도 되는 건지 또한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운이 없는 몇몇의 아이라고 하기에는, 이런 아이들이 전국에 최소 28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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