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창밖을 보고 싶어요"…옐로우하우스 여성의 소망

100년 넘은 인천 집창촌 역사와 옐로우하우스의 미래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인천 남구 숭의동 속칭 옐로우하우스 입구에 설치된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 표지판(사진 = 변이철 기자)
지난달 27일 수인선 인천구간(인천~송도)이 개통되면서 인천 유일의 성매매 집결지인 남구 숭의동 속칭 '옐로우하우스'가 요즘 뒤숭숭합니다.

'불법 성매매업소'라는 낙인이 찍힌 옐로우하우스는 숭의역 지상 출입구와 맞닿아 있는데요.

'청소년 유입 등이 우려된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이곳의 존폐문제가 지역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구청과 경찰,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성매매 집결지 정비 대책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경찰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순찰을 강화하고 있고, 구청은 가로등과 폐쇄회로 TV(CCTV)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업주들도 자발적으로 밖에서 업소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외부 유리에 노란색 필름을 붙이고 호객행위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옐로우하우스 업소 내부 모습. 외부 유리에 노란 필름을 부착해 바깥 풍경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 만나 A씨는 스스로를 '동굴에 갇힌 새'라고 표현했다. (사진 = 변이철 기자)
◇ "우리는 동굴에 갇힌 새…갑갑해 죽을 지경"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업소 여성들은 어떤 심경일까요?

지난 4일 이른 아침 옐로우하우스 내 한 업소에서 이곳에서 10년 동안 생활한 A씨(44·여)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첫마디는 "동굴에 갇힌 새처럼 갑갑해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업소의 외부유리창은 이들을 세상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들은 미용실에 가거나 옷을 사기 위해 가끔 외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업소 내부에서 보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유리창을 노란 필름을 붙여 다 막아버렸으니 마치 동굴 속 깊숙이 틀어박힌 것처럼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셈이죠.

"창밖을 쳐다보는 것이 여기 아가씨들에겐 유일한 낙이에요. '앞집에 새로 온 저 아가씨, 화장도 잘하고 옷도 예쁘게 입었네.', '저 아저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곤 하거든요. 또 아침에는 햇살이 비치는 인적 끊긴 골목길 풍경도 좋고요. 그런데 노란색 필름으로 창이 다 막혀버리니 숨이 막히고 너무 우울해요."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버린 A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먹고살 일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언젠가 이곳도 문을 닫겠죠. 제 나이도 있고…. 그럼 뭐라도 해야 하잖아요. 작은 커피숍이라도 하나 차리고 싶은데, 그냥 막연한 생각이죠. 돈도 없고 또 '이런 생활 하다 어떻게 사회에 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전에는 밤새 일 마치고 아침 9시에는 쓰러져 잤는데 요즘엔 오후 1시나 2시가 돼야 잠이 들어요."

옐로우하우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웁니다. 그만큼 외로워서일 겁니다. A씨 역시 13살이 된 시츄 한 마리와 페키니즈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젊은 아가씨들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곳이 제2의 고향이에요. 30년 동안 여기서 청소하고 빨래해주시고 밥 해주신 이모님이나 동료들도 다 가족 같죠. 큰 욕심은 없어요. 그냥 '내 밥벌이는 하면서 강아지들과 맘 편히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옐로우하우스는 한때 90개 업소가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쇠락해16개 업소에 약 120여명의 여성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진 = 변이철 기자)
◇ 100년이 넘은 인천 집창촌의 역사

사실 인천의 집창촌(集娼村) 역사는 1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개항기 인천에는 제물포를 중심으로 일본 거류지가 확장되면서 '매춘'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띤 '유곽'이 일찌감치 조성됐습니다.

인천시 사료집(인천역사문화총서)을 보면 1902년에 생긴 '부도루(敷島樓)'라는 유곽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창으로 인식됐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16개의 요리점과 106명의 창기(娼妓)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일제는 이후 부도루 유곽을 도시 기반시설 중의 하나로 이식했습니다. 또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곽은 '유엔군위안소'로 변신했습니다.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는 숭의동과 학익동(끽동) 성매매 집결지를 '특정지역'으로 지정해 윤락행위를 위법으로 간주하면서도 면세 혜택을 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역시 '윤락여성집중존치구역'을 설정하여 규제와 보호라는 양날의 칼을 가지고 매춘을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1984년 학익동에 아파트와 교육시설이 들어서면서 이곳의 성매매 집결지는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숭의동 옐로우하우스만 남게 됐습니다.


인천의 집창촌은 이렇게 뿌리 깊은 역사가 있어 그만큼 해체도 쉽지 않습니다.

경찰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병력을 대거 투입해 숭의동 옐로우하우스를 강제 해체하려고 시도했지만, 이곳 여성들이 알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 위협으로 맞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인천 옐로우하우스 주변에는 수인선이 지나고 대형 아파트단지도 들어서 있다. (사진 = 변이철 기자)
◇ 춘천시 '난초촌'을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다른 자치단체들은 골치 아픈 이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2013년 강원도 춘천시의 '난초촌' 폐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춘천시는 우선 탈성매매를 약속한 여성에게 1천만 원의 특별생계비와 150만 원의 별도 직업훈련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매매 피해 여성 자활지원을 위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고 총 4억 원의 예산을 마련했습니다.

이어 난초촌 안에 상담소를 설치하고 성매매 종사자를 지속해서 설득했습니다.

춘천시는 또 도시계획 시설상 주차장과 공원으로 정비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건물 매입과 철거작업도 힘 있게 추진했습니다.

시는 이를 위해 업주나 토지 소유주 등과 100여 차례 면담하며 대화에 나서 결국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매매집결지 자진폐쇄를 끌어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도 약 100개소에 200여 명의 종사자가 있는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도 춘천시의 사례를 참고해 2018년 사업 착수를 목표로 도시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또 오는 11월까지 '성매매 피해 여성 자활지원 조례'도 제정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4일 아침 속칭 '옐로우하우스' 거리 풍경 (사진 = 변이철 기자)
◇ 인천 옐로우하우스의 미래는?

옐로우하우스를 관할하는 인천 남구청과 남부경찰서도 환경 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진폐쇄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남구청은 이를 위해 숭의역 인근 업소 일부를 매입해 공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박우섭 남구청장은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가 마찰 없이 단번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려도 서로 수긍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달서 남부경찰서장도 박 구청장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공권력을 동원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고 극심한 후유증을 앓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숭의동 재개발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옐로우하우스 폐쇄'가 하염없이 늦춰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예산'입니다. '지원 조례'를 만들어 성매매 여성을 설득하든지 성매매업소를 매입하든지 결국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악한 재정여건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한 기초자치단체가 이를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차 보입니다. 그래서 인천시와 여성가족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함께 지혜를 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도덕 문란과 청소년 탈선, 집값 하락의 주범으로 늘 지탄받으면서 '사회적 배제'의 대상이 되어왔던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돕고 이들의 집결지를 리모델링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사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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