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 ① 필리버스터부터 빅데이터까지 '손 끝 왕좌게임' |
대한민국이 달라졌다. 길고 길었던 필리버스터는 생소한 의회 용어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던 민중들을 그것도 주말에, 국회로 이끌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직장에서, 밥 먹으면서, 화장실 갈 때조차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이 정치 참여 플랫폼으로 거듭나면서부터다.
시민들은 국회 방송, 이른바 '마국텔(마이국회텔레비전)' 생중계를 보거나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의 주요 발언을 요약해주는 '필리버스터 투데이'의 실황 요약 서비스를 보면서 댓글을 남기고 대한민국 정치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이들의 활약, 또 가치관에 주목했다. 하루 평균 5~6000여 건에 불과했던 국회방송 인터넷 의사 중계 시스템 접속자 수도 5만~10만 건 내외로 치솟았다.
필리버스터가 야당의 이벤트였다면, 여당에서는 지난해 새누리당 정치참여 앱 명칭 공모전을 열었다. 그 결과 'On통So통'이 탄생했다. 회원 가입을 하면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이나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 오바마 '앱' 크루즈 '앱'…스마트폰으로 GPS· 빅데이터 수집 '맞춤형' 선거운동
미국은 스마트폰이 정치 '플랫폼 화' 된 지 오래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에서는 '당대 가장 강력한 접촉 플랫폼'으로 여겨지는 수단이 선거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돼왔다. 국회의원은 물론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지구상에서 거머쥘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권력이자 명예다. 존 F. 케네디, 오바마 대통령이 각각 TV와 인터넷·스마트폰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주 적확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권자에게 '후보'라는 상품을 팔려면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들 눈 바로 앞에까지 도달하거나, 직접 떠먹여 줄 상품설명서가 필요한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될수록, 설명서 전달자 혹은 정치인과 유권자의 다리 역할을 '스마트폰'이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앱'(app)이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하면 그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오바마 앱은 이를 이용,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GPS를 파악해 스마트폰 소지자 주변에 있는 민주당원의 목록, 그리고 설득 가능해 보이는 공화당원의 이름과 주소를 제공한다.
2016년 현재, 유력한 공화당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도 앱을 만들었다. 지난달 기준으로 크루즈 앱의 다운로드 수는 6만 1000여 건에 달한다. 이 역시 앱을 내려받은 지지자의 스마트폰에서 나이, 성별, 이동 경로, 친구 목록과 전화번호 등을 수집해 선거전략 수립에 활용한다.
예를 들어, 앱을 통해 아이오와주의 주민들이 신호위반 카메라 설치에 상당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파악한 크루즈는 주민들이 먼저 어떤 주장을 하기도 전에 신호위반 카메라 설치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전달한다. 주민들의 크루즈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순간이다. 크루즈는 이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 회사인 케임브릿지 애널리틱스에게 380만불(약 47억원) 가량의 돈을 지불할 정도다.
SNS도 스마트폰을 플랫폼 삼아 많은 정치인이 홍보와 소통에 사용하고 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경선 후보 역시 페이스북과 스냅챗(미국의 모바일 메시지 앱)을 활용, 젊은 유권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 글로벌 SNS 업체 관계자는 "힐러리는 물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대세론'을 흔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핵심 전략도 SNS 모바일 마케팅과 온라인 소액 기부"라며 "샌더스 의원은 각종 SNS를 활용하며 70대 노장의 이미지까지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플랫폼 된 스마트폰…정보 제공 vs 정치적 조종·사생활 침해 '양날의 검'
그렇다고 손끝 정치가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 빅 아일랜드 카운티 의원 선거에 나선 그레고르 이아간(Greggor Ilagan, 29)은 데이팅앱 '틴더'를 선거에 썼다. 틴더 앱은, 실행시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선택, 사진과 함께 간단한 메시지가 뜬다. 이때 화면에 뜬 이성이 마음에 들면 오른쪽, 안 들면 왼쪽으로 넘기는데 서로가 다 맘에 든다고 했을 때에 대화가 가능하다.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오바마 앱도, 합법이긴 하지만 사생활 침해가 지나쳤고, 앱에 공개된 여성, 노인 등 보호가 필요한 시민들이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등을 돌리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테드 크루즈 역시 빅데이터를 얻는 만큼 여론의 질타도 피해갈 수 없다. 그는 "시민들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의 사생활 침해를 줄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시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자가당착에 걸린 셈이다. 정보가 공개되고 또 급속도로 퍼지는 모바일 시대에, 스마트폰이라는 정치 플랫폼은 후보자에게나 유권자에게나 '양날의 검'이 되는 셈이다.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를 쓴 MIT 정치경제학과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는 정치인이 스마트폰으로 유권자와의 소통에 나선 것에 대해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면서,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런 교수는 "정치인, 정당 앱의 순기능도 분명 있지만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려면 유권자 스스로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