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해 3월 성교육 표준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여성단체가 이 표준안이 금욕을 강요하고 성차별을 강화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자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5일 교육부가 운영하는 학생건강정보센터 사이트에는 성교육 표준안에 따른 '학교성교육지도서' 수정대조표가 공개돼 있다.
수정된 부분은 초·중·고등학교 지도서 중 150곳으로, 내용을 삭제, 수정한 것 외에 오타나 띄어쓰기를 고친 부분이 포함돼 있다. 논란이 됐던 성차별을 강화할 수 있는 내용이 빠졌고 성에 대한 편견을 불러올 수 있는 내용들이 빠진 점이 눈에 띈다.
초등학교 3∼4학년 지도서 74쪽 '성별에 따른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중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원래 '아빠: 못박기, 전구갈이, 가구 옮기기, 엄마: 음식 만들기, 옷장정리, 빨래 개기' 등의 식으로 성별에 따라 성 역할을 규정하는 내용이 있었다.
수정본에서는 성별 구분없이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논의하도록 했다. 수정본은 수정 사유로 "성별에 따라 성역할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어떤 가족 구성원이 어떤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는 다르다"고 서술했다.
138쪽 '성폭행'의 개념은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성기를 강제로 피해자의 생식기에 삽입하는 행위'로 규정했던 것을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간, 강간미수,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을 하는 행위'로 수정했다.
중학교 지도서에서는 65개 내용이 수정돼 내용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
지도서 135쪽에는 '특히 성과 관련된 거절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 내용은 '적절하지 않은 서술'이라는 이유로 삭제됐다.
155쪽 '무분별한 성 욕구 충족은 사회문제가 될 수 있으며 성욕구를 성관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부분은 '성욕구를 성관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스스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될 때까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식으로 수정됐다.
성매개 감염병의 종류와 예방을 설명하면서 '성관계는 늦으면 늦을수록, 성관계 파트너가 적으면 적을수록 성매개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부분 역시 삭제됐다.
성폭력 대처방법의 하나로 '친구들끼리 여행가지 않는다'는 제시한 내용도 수정본에서는 빠졌다.
고등학교 지도서에서는 27곳이 변경됐다.
74쪽 '출산과 부모 되기' 부분에서는 건강한 자녀 출산의 조건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규정한 듯한 부분이 고쳐졌다.
삭제 전 지도서에는 '인간의 건강은 선천적으로 자궁에서 결정된다, 건강하고 총명한 아기를 원한다면 임신 전부터 자궁관리가 중요하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부부가 함께 임신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아버지는 금연 금주를 하고 어머니는 적당한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160쪽 미혼모 서술 부분에서는 '미혼모' 용어를 '미혼부모'로 바꿨다. 또 '미혼모가 개인의 부도덕이나 무절제 등 개인의 결함 차원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한다'는 내용도 빠졌다.
'건전한 성생활의 조건'을 설명하며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데 비해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널리 성교할 수 있다'는 부분은 청소년들에게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데이트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행동 지침에 '평소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는 태도를 지닌다', '남성우월적인 태도를 지녔거나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이 형편없는 남성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성관계를 갖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함께 숙박업소에 가지 않는다' 등의 내용도 사라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논란이 됐던 부분 등을 수정·보완한 내용을 지난해 9월에 각 학교에 다시 안내했다"면서 "성교육 표준안을 토대로 한 성교육이 학교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최근 '성평등 걸림돌' 중 하나로 성교육 표준안을 꼽는 등 표준안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여연은 "교육부는 성교육을 진행해 온 여성단체, 인권단체 청소년 단체가 민원을 제기하자 부분적인 수정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특정 단어(자위, 야동, 동성애) 사용을 제한하거나 외부강사 초빙시 교사의 현장지도를 의무화하는 등 표준안을 준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연은 "시민사회는 아동 청소년의 현실을 외면하고 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을 강조하는 표준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