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에서 <도덕감정론>을 출간했다. 옮긴이 김광수 교수(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는 스미스가 교수로 있던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애덤 스미스의 형이상학과 과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번역은 스미스가 죽기 직전 대대적으로 수정 출간한 <도덕감정론> 제6판을 완역한 것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sympathy)의 원리'를 강조한다. 타인에게 동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자기 통제, 신중, 적절한 박애, 자혜 등 사회를 기품 있게 하는 모든 덕목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세계'는 '법과 통치의 세계'에서 타인의 권리와 사회질서를 존중하도록 하는 이념의 토대를 쌓는다. 또한 '경제의 세계'에서는 지나친 이기심과 탐욕보다 사회적 준거를 따르는 경제활동을 지향하도록 한다. 즉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으로 설명하는 '사회(공동체)의 세계'와 '동감의 원리'는 그의 도덕철학체계에서 핵심을 이룬다.
스미스에게 동감은 사회적인 본능으로 작용하는 '보편적인 도덕감정'이다. 연민이나 동정, 단순한 감정이입과는 전혀 다르다. 이타심도 아니다. 스미스는 이기심에도 동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간단한 사례로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남을 돕는 사람의 행위에 동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일지라도 적정한 범위 안에서만 한다면 동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물론 동감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체계에 속하며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은 스미스식 동감에도 적용된다. 다만 중요한 건 스미스가 동감의 기준으로 '적정성'(propriety)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타적인 행위라도 적정하지 않다면 동감할 수 없고 이는 그 행위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적정성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인류가 축적한 경험을 통해 공정한 관찰자를 마음속에 상정할 수 있다. 이 상상 속의 관찰자가 어떤 행동에 동감한다면 그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곧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가 행동의 도덕성을 적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공감하며 '승인'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동감과 공정한 관찰자가 인류 본래의 도덕감정으로서 다른 본성이나 열정을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이기심과 탐욕이 사회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깨지 못하게 조절함으로써 좀 더 올바르고 적정하며 정의로운 발전을 가능케 한다. 바로 이것이 "신이 우리의 내면에 설정해놓은 대리인들이 공표하는 신의 명령과 신법으로 간주"해야 할 동감과 공정한 관찰자의 진정한 의미다.
"인간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서로의 조력을 필요로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호 침해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필요불가결한 조력이 상호성을 기초로 애정, 우정, 존경 등으로부터 제공될 때 그 사회는 번영하고 행복하게 된다." _ 237쪽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불안해진 미래 때문에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상호성의 행동과 정의가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도덕감정론>이 던지는 메시는 새길 만하다.
애덤 스미스 지음 / 김광수 옮김 /한길사/ 760쪽/ 3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