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와의 e메일 인터뷰 기사가 3일자 모 일간지에 실렸다. '판후이'는 지난해 10월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다섯 번 대국을 벌여 완패한 프로기사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떠오른 것은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동상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 남자가 등을 구부리고 바위 위에 걸터앉아 손등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이 조형물은, 사색할 줄 아는 인간의 우월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동상의 이미지가, 기계 앞에서 무기력해진,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에 잠긴 인간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이 생겨났다.
'판후이'는 '알파고'가 <완전체>의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완전체는 그 자체로 완전한 상태를 이루는 사물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완전체가 되기 힘들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육체만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정신영역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때문에 인간은 신을 찾는 게 아닐까.
'판후이'의 이어지는 대답은 더 놀랍다.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컴퓨터와 바둑을 두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사람과 바둑을 둔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알파고'에게서 '사람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첫 대국에서 '알파고'가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는 두 번째 대국부터는 전략을 바꿔 공격적으로 나갔지만 그래도 졌고, 나머지 세 번의 대국마저 지고 말았다. '판후이'는 대국 내내 '약간은 특이하지만 강한 기사와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고 결국 대국을 할수록 '알파고'가 실수를 하지 않는 <완전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인간' 판후이는 '기계'(인공지능) 알파고 앞에서 정신적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는 가장 큰 취약점을 기계 앞에 드러내고 말았다. 생각하는 동물 호모사피엔스에게 '생각'하는 능력은 엄청난 장점이기도 하지만 치명적 결점이기도 하니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 '판후이'는 인간이 발명한 인공지능 기계 '알파고'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기(氣)가 흔들렸다. '알파고'는 상대방에게 감정을 들어내지도 않았을 뿐더러, 상대의 기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흔들린 것은 '알파고' 앞에 마주 선 인간 '판후이'였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인간이 신에게 벗어나 근대인으로 우뚝 선 창조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9일 오후 3시 서울에서 펼쳐질 '인간' 이세돌과 '인공지능 기계'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 로댕의 조형물 '생각하는 사람'의 운명까지도 바꿔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과연 인공지능 기계가 자신을 창조한 인간을 벗어나 새로운 초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