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위안부' 할머니의 시간을 붙잡고 싶습니다 ② "여러분 보세요. 역사의 산 증인 이용수가 있습니다" ③ "일본 사과 받아야 편하게 갈 수 있을텐데…" ④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웃었습니다" ⑤ 할머니, 우리가 함께 기억 할게요 |
지난해 12월 28일. 저마다 2015년을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고 있던 그때 한·일 외교장관이 회담을 갖고 위안부문제 합의안을 발표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일 정부간 합의 이전에 당연히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상의를 하는 게 순리이자 도리 아닐까요?
합의문 발표 다음날, 대한민국 외교부 1차관이 연남동에 있는 정대협 쉼터를 방문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차관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졸속 협상을 진행한 정부를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복받쳐 오르는 억울함은 참을 수가 없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 오열하며 외쳤습니다.
노컷뉴스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용수 할머니 영상을 노컷뉴스 페이스북에 올렸고, 할머니의 외침은 SNS를 타고 급속히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며칠 뒤 노컷뉴스 페이스북에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한 유학생이 위안부 협상 관련 내용을 외국인도 알 수 있게 할머니의 영상에 영어자막을 입혀 다시 내보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영어자막은 그 유학생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영어자막을 입힌 영상 역시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해외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협상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응원의 답글을 보내주었습니다. 그 순간 노컷뉴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에 스쳐 간 것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의 건강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와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번 전신 3D모형 제작의 고민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연일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이전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마당에, 우리가 직접 할머니 피규어를 만들어서 기억하는 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할머니들의 피규어를 제2, 제3의 소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 할머니 3D모형 제작 캠페인에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이 기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후원하기 위해 <다음 뉴스 펀딩>에 제공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