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은 '귀향(鬼鄕)'해야 한다

영화 '귀향' 포스터
"집에 가자"(영희), "내 곧 따라간대이"(정민).


영화 '귀향(鬼鄕-Spirits' Homecoming)'에서 영희와 정민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다.

영희와 정민은 일제강점기 군 위안부 피해를 당했던 우리의 딸이다. 일본군 총탄에 스러져가는 열네 살 정민. 독립군 손길에 삶을 찾은 한 살 터울 영희.

끝내 정민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른 수많은 소녀들과 함께 정민은 차디찬 전장터에 버려지고 태워졌다. 그러나 정민의 넋은 나비가 되어 푸른 바다를 건너고 푸른 하늘을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고향으로 불러오는 소원을 담았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우리 소녀들은 무려 20만명. 살아 돌아온 사람은 고작 238명. 그리고 지난달 김경순 할머니가 향년 90세로 눈을 감으면서 이제 44명만이 한맺힌 세월의 더미를 버리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 97주년 3.1절을 하루 앞두고 29일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주인공인 영희와 정민의 나이가 14살, 15살이어선지 관객 가운데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강제로 끌려온 소녀들은 일본군의 벌거벗은 야만에 비명 지르고, 피묻은 총부리 앞에 통곡했다. 영화 속 장면에 시선을 고정한 관객들은 터져나오는 한숨과 울분으로 공명했다.

'귀향'은 슬프고 아프고 화나고 불편한 영화다. 슬픔과 아픔, 분노는 대다수 관객들의 반응이자 우리 국민들의 정서일 것이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이지도 불가역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실증하는 것이다. 더욱이 피해 할머니들은 양국 정부간 합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 강일출 할머니(88)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모티브 (motive)로 하고,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한 '귀향'의 첫 시나리오는 지난 2002년에 완성됐지만 투자 거부와 상업성 결여 등의 이유로 제작에 난항을 겪다 마침내 14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

7만5270명의 국내외 후원자들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제작비의 절반이 넘는 12억원을 마련했고, 배우와 제작진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한 것이다.

그 결과 '귀향'은 개봉 닷새 만에 전국 769개 상영관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 '귀향'을 통해 우리는 새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몰래 겪어야만 했던 질곡의 세월을 끌어 안아야 한다. '정말로 이대로는 세상과 이별할 수 없다'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원한을 씻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새학기부터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공부하게 되는 국정 새 사회(역사)교과서에는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다"고만 기술돼 있다.

이같은 표현만으로는 영화 '귀향'에서 느낄 수 있는 울분과 분노, 아픔과 슬픔의 역사를 가슴 속에 새길 수 없다. 또 2014년 실험본에 실렸던 임신한 위안부 옆에서 웃고 있는 일본군 사진도 빠졌다.

위안부 소녀상 (사진=박종민 기자)
정부는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을 초등학생이 학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빠졌다"고 설명하지만 군색(窘塞)할 따름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한일 양국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지난해 12.28 합의문서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28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일본 정부가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거짓 주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력이 약해 일본에 강점되고 그 결과 아무 죄없는 꽃다운 소녀들이 일제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혀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3.1절인 오늘 우리는 귀향(鬼鄕)을 통해 다시 한번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 회귀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