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변호사는 '자본시장에서의 이익충돌에 관한 연구' 라는 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서울대 로스쿨 출신 1호로 오늘(26일) 박사학위(상법전공)를 받게 됐다. 지도교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친 박준 교수(사시 18회 출신).
수능성적에 따라 서울법대로 진학했지만 법학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사법시험도 왜 봐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응시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럴거면 왜 법대를 갔느냐는 질문에 "부모님께서 법대만가면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고 해서 갔다"고 답했다.
그래서 늘 등교는 중앙도서관 자료실로 했고 수업을 빼먹고 하루종일 소설책을 보거나 역사책을 보면서 인문대와 사회대 수업을 기웃거렸고 야구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도망다니고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 시기였다고 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부전공이었던 서양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인문대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화해했고, 전공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 오전 8시에 등교해 밤 10시까지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노예무역선 관련 그림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느꼈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주제로 쓴 석사논문을 썼지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인생에서 쓴맛을 본 큰 좌절이었다고 기억한다.
김 변호사는 논문 지도교수가 가을에 논문 통과 안 시켜준다고 해서 뭐하고 살까 고민하다가 외무고시를 보기로 방향을 틀었고 6개월만인 이듬해 제40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한 번에 1,2,3차를 모두 패스한 것이다. 홧김에 외무고시를 봤는데 엉겁결에 합격한 셈이 됐다는 얘기다.
이 때 도움을 준 친구가 천정배 전 법무장관의 둘째딸인 천미성씨(외무고시 39회. 서울대 경영99), 1년 먼저 합격한 친구로부터 책을 물려받아 공부해 시험에 합격했고, 외교부에는 함께 입부한 절친이다.
중2학년 때 부모님이 사준 오래된 피아노가 재산 목록1호라고 한다. 물론 이제는 3년간 피와 땀이 배인 박사학위 논문을 재산목록 1호로 삼고 싶지만 피아노는 자신을 지켜준 친구와 같다.
김 변호사는 외교부 근무시절 뒷풀이 장소에서 피아노를 쳤고 이런 모습은 피아노를 전공하다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꾼 당시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곧잘 비교되곤 했다.
외교관 4년째 외교부를 그만두고 로스쿨로 진학하려는 그녀에게 선배들은 "콘돌리자 라이스 만들어 줄려고 했는데 사표를 냈다"며 농반진반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라이스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할 정도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음악을 전공하던 중 울브라이트 국무장관 부친의 강의를 듣고 소련과 동유럽 정치학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뒤 흑인여성 최초로 스탠퍼드대 부총장이 된 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거쳐 국무장관에 올랐다.
김 변호사와 라이스의 닮은 점은 음악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점이다. 라이스는 음악을 전공하다 정치학도가 됐고 김 변호사는 음악을 하다 법학도가 됐다.
라이스는 '흑인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고 김 변호사는 수능 수석과 서울대 로스쿨 출신 첫 법학박사라는 점도 닮았다. 그리고 여전히 두 사람은 독신이라는 점(나이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도 유사하다.
김 변호사에게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솔직히 말하면 진짜로 공부를 많이하고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서 "이제 막 공부가 재밌어 지려 한다"고 말했다. '공부가 재미있어요' 또는 '공부가 제일 쉬워요'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공부벌레다.
외교관을 4년여만에 그만두고 로스쿨을 택한 건 주위의 권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법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김 변호사는 "방황하다 돌아오니까 법학이 훨씬 재밌고 공부할 것도 많다"면서 "로스쿨 가서 지금 지도교수님 만나 공부를 계속 하게 되었고 박사학위를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로스쿨을 졸업하면 석사학위가 수여된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근무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김앤장의 주니어 변호사가 입사 2년차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일도 놀랍지만 박사과정 3년만에 논문을 쓰고 심사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은다.
김 변호사는 "2년동안 모든 휴가와 휴일과 명절, 주말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소식을 듣고 '불가능하다'거나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김 변호사는 여전히 피아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다.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가 됐으니올해안에 독주회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연주할 레퍼토리도 정해 놓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 소나타'이다. 여기에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 변호사는 "음악을 그만두기 전까지 엄마가 피아노 시킨것을 원망했지만 그만둔 뒤에는 부모님이 피아노 시켜준 걸 감사해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성격은 '낯가리고 많이 내성적인 고양이 과'라면서 동생이 '진짜 외향적이고 잘 나서고 씩씩하다'고 소개했다.